회한의 순례길, 제주 올레 '출발'

11월18일(수) 17 코스: 광령 - 제주원도심 올레

by 이철현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온 4050 세대라면 한번쯤 꿈꾼다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려 했다. 지난 2년여간 몸담았던 그린피스를 그만 두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가장 먼저 순례길 완주 계획을 세웠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체험담을 읽고 순례 루트를 정하자마자 유럽 전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신규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스페인도 제2차 팬더믹의 예외가 아니었다. 스페인에 입국할 수 있을 지도 의심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을 만날 기회도 없고 숙소 잡기도 힘들 듯하다. 그래서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로 방향을 틀었다.


먼저 제주 올레길을 택했다. 2007년부터 조성된 터라 제주올레(jejuolle.org) 웹사이트를 비롯해 정보도 풍부하고 길도 잘 정비된 터라 고생이 덜할 듯했다. 제주 올레길을 구상하고 만든 이가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이다. 서 이사장은 시사저널 기자 시절 편집장으로 모셨던 분이다. 돈독했던 사이는 아닌 지라 인연을 거창하게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성격이 괄괄하고 술 마시면 폭력성을 드러내는 분이라 그리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었다. 그랬던 내가 서명숙 선배가 구상하고 조성했던 올레길을 걸을 줄이야. 심지어 서 선배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서명숙 선배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뒤 제주 올레길 조성을 구상했다. 한참 올레길을 계획하면서 서귀포 인근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있던 서명숙 선배를 만난 지도 15년이 넘었다. 사람의 인연이야 이어졌다가 어긋났다가 하지만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면 끊어진 인연마다 아프다. 어긋난 인연마다 그럴 수밖에 없었나하는 후회로 이불킥하곤 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 기자, 데스크를 거쳐 삶의 여정을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잘못된 선택을 거듭하다 이제 돌이키지 못한 지점에 닿은 회한을 떨칠 수 없다. 내 삶은 잘못됐다.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텐데.


뜬금 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래서 걷기로 했다. 400km 거리를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면서 삶의 여정을 돌이키고자 한다. 삶의 단락이 맺어질 때마다 내렸던 내 선택을 돌이켜 정리하고 싶었다. 그게 자학일지 연민일지 모르겠지만 더 늦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사히 제주 올레길 여행을 마치면 내년 봄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자 한다. 올레길에서 지나온 날을 되새김질하며 한탄하며 자책한다면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앞으로 내딛을 삶의 남은 여정을 어떻게 해야할 지 정리하는 시간이 되길 기원한다.

분기범마다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 파란색은 코스의 정방향, 주황색은 역방향을 가리킨다.

제주로 떠나기 전에 대학원 동기이자 친구이자 동생인 원석에게 전화했다. 원석은 제주에 제법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부호다. 부친이 제주에 일찌감치 자리잡고 사업을 벌이면서 제주시를 중심으로 부동산을 대거 사들였다. 제주도 부동산이 아주 쌀 때 ‘줍줍'하신 듯하다. 원석은 그 부동산을 그대로 상속받았다. 인성이 선하고 늘 미소를 얼굴에 담고 사는 이라 하늘이 복을 주신 듯하다.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완주한다고 하니 원석은 선뜻 제주 롯데시티 호텔 옆, 번화가 한복판에 갖고 있는 오피스텔 하나를 쓰라고 턱 하니 내놓았다. 잘못 살아온 이에게 과분한 친구이자 동생이다. 덕분에 원룸 오피스텔을 베이스캠프 삼아 순례 코스를 하나씩 돌기로 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간선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이동하고 도착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제주시로 들어오는 식이다.


제주공항에 아침 8시20분 도착해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나니 원석이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고 오피스텔로 찾아왔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맛집으로 소문난 곰탕집에 갔다. 오래 끓인 곰탕 국물에 고기를 듬뿍 넣은 터라 한끼 식사로 든든했다. 다시 오피스텔로 들어와 나갈 채비를 마치자 11시에 가까웠다. 이에 숙소에서 가까운 17번 길 광령 - 제주원도심 올레를 첫 코스로 정했다. 출발지 광령1리 사무소는 숙소 옆 한라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15분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코스 분기점마다 나타나 해당 지역을 설명해주는 말 모양의 이정표

광령1리 사무소에서 내려 순례 개시 도장을 포스트잇에 찍었다. 이곳에서 도착지 간세라운지까지는 총 18.1 km다. 7시간 가량 걸린다고 하니 서둘러야 했다. 20~30 미터 간격으로 걸린 파란 띠와 주황색 띠를 이정표 삼아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띠가 보이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그러면 서둘러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방향을 바꿔야할 곳은 역시 파란색 내지 주황색 화살표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었다. 파란색과 주황색 화살표는 늘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파란색 코스는 둘레길을 순방향으로, 주황색 코스는 역방향으로 돈다.


시흥리에서 도로를 따라 걷다가 사거리를 만나 방향을 찾지 못하다 간신히 무수천사거리에서 무수천트멍길로 들어서는 입구를 찾았다. 왼쪽으로 무수천이 흐르고 오른 쪽에는 제주 돌담길, 귤 농원, 숲을 두고 걸었다. 길 초입에 들어서자 새 소리가 들렸다. 대로에서는 질주하는 자동차 탓에 들리지 않던 새 소리가 숲 속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귀에 들려온 것이다. 딸깍거리는 소리를 베이스로 벌레가 짠짠거리며 멜로디를 잡으면 까마귀가 멀리서 까악 까악 목청을 높였다. 초입에서는 무수천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울창해 저 아래로 흐르는 무수천을 가렸다. 무수천 하류에 가까워지며 숲의 울창함이 잦아들자 돌 사이에 고인 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량이 적어 천라고 하기보다 연못에 가까웠다. 제주는 용암 폭발로 생긴 터라 비가 오더라도 현무암 구멍 사이로 빗물이 빠져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므로 제주의 강은 물이 늘 부족하다.


길에 연한 귤 밭에 들어가 귤을 따 까먹으며 걸었다. 제주에서 귤은 넘처난다. 딸 수 있는 손이 부족하다보니 걸린 채로 썩어가는 귤도 많다. 무수천트멍길을 빠져나오자 월대천이 이어졌다. 월대천은 제주시 상수원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의 다른 강보다 수량이 풍부하다. 걷는 길 밑으로 야무진 소리를 내려 흘러가는 강물을 느낄 수 있었다. 방파제 너머로 흘려가는 물줄기도 제법 풍부했다. 덩치는 크지만 볼 거는 없던 월대천 끝에 외도월대가 자리했다. 300~500년 팽나무와 해송이 양쪽으로 드리우고 강줄기가 고요히 흐르는 곳에 수면에 달 그림자가 비친다고 한다. 한낮에 본 월대에는 달이 없어서인지 그 풍치를 알 수 없었다. 다만 300년 이상 자란 해송이 내 앞에서 버티며 굽고 뻗은 가지에 담긴 수백년 세월이 눈에 보이지 않은 달 그림자보다 근사했다.

걷다가 만난 뱀. 식겁했지만 반가웠던 친구. 앞으로 있을 진귀한 체험을 알려주는 전령사 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외도월대에서 내도바당길로 넘어가려다 식겁했다. 강물이 찰랑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려다 다리 초입 돌 난간 사이에 고개를 내민 뱀을 발견했다. 뱀은 나그네가 신기한지 깨진 돌 난간 사이에 얼굴만 내밀고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대로 직진했다가는 바로 물릴 뻔했다. 뱀을 다리 난간에서 발견한 것도 신기했지만 이 위험을 발견한 것도 천만다행이다. 지난달 남해에서 평생 처음으로 이글을 한 행운 덕인가. 낯선 경험이 좋은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여행마다 평범하지 않은 체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고 할까. 아무튼 놀란 가슴 달래고 다른 길을 찾아 내도바당길로 접어들었다.


내도바당길 따라 해변을 걷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해안에 잇닿은 보말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칼국수와 제주 휘트에일 맥주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열린 문 너머로 바다와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흰구름이 군데군데 덧칠한 푸른색이라면 바다는 짓푸른 감색이었다. 하늘 빛을 담아 바다가 파랗다고 하는데 색의 농담은 너무 달라 그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햇빛은 눈부셨고 하늘은 옅은 하늘색이었고 바다는 짙 푸른 바닷색이었다.

해안 바위마다 낚시객들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이둘은 세월보다 고기를 맹렬하게 낚고 있었다.

술에 취해 해안을 걷다보니 이호테우해수욕장이 나왔다. 잔잔한 파도에서 서핑을 배우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서핑 보드 위에서 무릎을 세우고 두 발로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표정이 아주 진지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시원한 바닷물이 발가락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모래의 감촉이 좋았다. 알작지 해안이 있다고 하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알작지는 바닷물에 화산암 덩어리들이 오랫동안 깍이면서 둥글둥글해진 자갈을 일컫는다. 그니깐 알작지 해안이라면 모래 대신 자갈밭으로 가득한 곳이다. 얼핏 검은 알작지를 보긴 했는데 그곳이었나.


17 코스에 ‘섬머리'라는 뜻의 도두라는 오름이 있다. 육지 쪽을 향해 불뚝 솟은 오름이라 섬의 머리라고 한다. 섬 머리 치고는 높이가 낮다. 68미터밖에 되지 않으므로 오름이라고 하기 무색하다. 도두봉에 오르니 북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제주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가 끊임없이 오르고 내렸다. 그곳 정상에서 대자로 누워서 한숨 잤다. 정상에 나무판으로 쉴 곳을 만들어 여행객이나 커플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곳이다. 뒤늦게 도두봉에 오른 여행객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 서둘러 오름을 내려왔다.


그다음부터는 해안선을 따라 철의 행군. 어영소공원부터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명소를 눈으로 스캔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였다. 뒤쪽으로 제주의 석양이 등을 비추며 강렬하게 스러져갔다. 하늘에 커튼처럼 깔린 반투명의 구름에다 석양은 화려하지만 안타까운 빛을 뿌렸다. 바닷가로 나와 사진 찍고 있는 여인 2명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내 사진 촬영이 끝나자 그 둘을 찍어주었다. 여인 2명은 아름다웠다. 석양을 등지고, 또 마주한 모습에서. 그 아름다움을 석양이 기가 막히게 장식했다.

지나다 만난 아름다운 이에게 촬영을 요청했더니 이리 근사하게 찍어주었다.

용두암에는 사위가 어두워졌을 때 도착했다. 용두암이야 워낙 유명한 터라 여러차례 보았지만 용연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한라산에서 내린 물이 바다와 만나면서 만들어진 연못이다. 풍경이 멋져 용이 산다는 전설을 지닌 곳이다. 용연을 가로지르는 용연다리를 건너 마지막 코스인 관덕정으로 향했다. 어두어지니깐 파란 표식을 찾기 어려워 헤멘 끝에 관덕정에 도착했다. 제주목관아는 문을 닫아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관덕정 앞에 앉아 쉬었다. 관덕정 안에는 어르신 한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르신은 한가함일지 아니면 외로움일지 모르는 시간을 흘려내고 있었다.


관덕정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도착지 간세라운지에서 도착 스탬프를 찍었다. 그곳에서 가까운 제주동문시장에 들어갔다. 한번 와본 것 같은 데자뷰. 이건 뭐지? 한참 생각해보니 몇해 전 친구 성희와 제주에 놀러와 들러 회를 먹은 곳이었다. 당시 성희는 개인사로 힘겨워하다 제주에 가자고 했고 나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내 유일한 여사친 성희는 늘 그렇게 뜬금없이 연락한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게 감사할 따름이다. 동문시장에서 나와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갔고 그 앞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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