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연습 나흘째. 거울 보고 쉐도우 복싱을 3분 연습하고 1분 쉬는 루틴을 반복했다. 이 루틴은 신경쓸게 너무 많다. 하나라도 소홀하면 복싱이라기 보다는 동네 개싸움처럼 보이는 터라 세심하게 자세 하나하나 신경쓰며 뛰어야 하므로 여간 힘든게 아니다. 3분간 뛰다보면 땀에 흠뻑 젖는다. 쉐도우 복싱을 2라운드 마치면 같은 루틴으로 샌드백을 때린다. 샌드백도 3분간 때리고 1분간 쉬는 루틴을 2회 반복한다.
루틴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걸 모두 머릿 속에 두고 자세를 취한다는게 가능할까 싶다. 스텝을 밟으면서 세번 왼손 잽을 날리다가 세번째 스텝에서 왼발을 바닥에 단단히 딛고 왼발보다 반발짝 뒤에 둔 오른 발의 뒷꿈치를 바깥으로 틀면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이때 상체 중심을 가운데 두고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 상체를 돌리면서 오른손 주먹을 던지듯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향해 쭉 뻗어야 한다. 중심이 앞으로 쏠리지 말아야 하고 태권도 자세처럼 오른쪽 어깨가 그 자리에서 멈춰 주먹만 나가서는 안된다. 왼발은 앞에 두되 발 끝을 15도 가량 안쪽으로 당겨야 하고 뒷발은 뒤로 너무 빼지 말고 반족장 뒤에다 두되 오른쪽 어깨만큼 벌려야 한다. 스텝은 앞으로 뒤로 경쾌하게 밟아야 한다. 오른 주먹을 뻗을 때는 왼 주먹은 턱에 붙여 상대 카운터 펀치에 대비해야 하고 왼손 팔꿈치는 명치 부위에 두어야 한다.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마치자 관장이 스파링 보고가라고 권한다. 관장은 체중이 상당히 나가는 탓에 둔해 보이지만 팔 두께가 상당해 한때 권투 선수였음을 알 수 있다. 머리 숱이 적어 상당히 벗겨져 있고 살이 많은 얼굴과 이마에는 두툼한 주름살이 넉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예순일곱에 어울리지 않은 활력이 느껴진다.
“우현이가 오후 6시 정두홍 무술감독과 스파링한다.”
마우현. 키 181cm 몸무게 80kg 미들급 프로복싱 선수다. 2010년 중학생 시절 복싱에 입문했고 부산에서 아마추어 선수로 활약했다. 지난해 8월 군대를 제대한 뒤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에서는 큰 아버지가 운영하는 풍산권투체육관에서 기초 체력 등 일상의 연습을 반복하고 스파링은 아시아 챔피언들이 즐비한 한남체육관에서 연습한다.
지난해 12월 프로에 입문했다. 전적은 4전3승 3KO승 1패. 10월말 8라운드 경기를 가진 뒤 12월 한국 챔피언에 도전한다. 우현은 얼굴에 살이 풀어져 부어있는 듯 보이고 그 살 안에 작은 눈은 초코렛 비스켓에 들어있는 초콜릿 청크처럼 박혀 있다. 머리는 하나하나 치솟아 올라 질서 없이 부풀어 있고 코와 입 주변에는 다듬지 않은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나 자리 잡았다.
헤드기어 안쪽에서 반짝이는 눈은 상대를 잔인하게 쏘아 보고 상대 얼굴에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리다 상대 왼쪽 또는 오른쪽 비어있는 복부를 끊어 치는 것이 일품이다. 왼손 잽, 오른손 훅, 왼손 어퍼컷, 그러다 느닷없이 허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돌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회전시키며 오른 주먹으로 상대 왼쪽 옆두리를 끊어 치면 상대는 그대로 주저 않았다. 큰 아버지인 관장도 우현의 연타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우현이는 복싱을 아기자기하게 한다. 펀치력보다 연타 능력이 탁월하다.”
9월23일(수) 오후 6시 무술감독 정두홍이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영화 액션 장면은 거의 연출하다시피하고 본인 스스로 영화 <짝패>에서 보여준 액션 장면에서 육체적 강인함을 보여준 터라 우현과 스파링을 상당히 기대했다. 정두홍 감독은 체육관에서 와서 줄넘기로 몸을 풀고 링에 올라 쉐도우 복싱을 15분간 했다. 흥미진진하리라 기대했던 스파링은 실망스러웠다. 우현은 주먹에 힘을 싣지 않고 툭툭 치는 듯하면서 스텝만 밟으며 링 주위를 돌았고 정두홍 감독만 우악스럽게 가격했다.
“우현이가 제대로 때리면 큰일 나므로 우현이는 때리지 않고 상대만 해주라고 했지.”
우현은 몇차례 얼굴을 가격 당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스텝을 밟으며 상대 공격을 옆으로 흘리며 3분을 견뎌냈다. 3분이 지나자 정두홍 감독은 지쳐서 숨도 못쉬었다. 결국 한 라운드 쉬겠다고 해서 다음 스파링 선수가 링에 올랐다. 경찰청 소속 경찰관으로 오랫동안 권투를 연습한 친구였다. 역시 우현은 스텝을 밟으며 상대 공격을 피했고 상대는 엉거주춤한 자세와 힘이 실리지 않은 주먹을 어색하게 뻗었지만 유효타는 거의 날리지 못했다. 종아리 두께가 얇은데다 하얀 탓인지 내가 상대해도 때려 눕힐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왜소하게 보이기는 정두홍 감독도 마찬가지다. 마른 탓에 웰터급이나 라이트급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종아리가 얇아 주먹을 날릴 때 하체가 제대로 받쳐줄 지 의심스러웠다. 2라운드가 끝나자 정두홍 감독이 다시 링에 올랐다. 1라운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기가 진행됐다. 4라운드에는 그 유약해보이는 경찰이 올랐다. 정두홍 감독이 더이상 못뛰겠다고 주저 앉으면서 그 경찰은 5라운드도 뛰었다. 5라운드가 끝나자 경찰은 로프에 기대어 숨도 못쉬고 있었지만 우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링에서 내려왔다. 숨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우현이 제대로 힘을 내 스파링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공포스러웠다.
관장이 내게 우현이와 스파링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 사양할란다. 제대로된 스파링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우현에게 제 실력을 보여달라고 했다간 경기 시작과 함께 왼쪽 옆구리에 꽂힌 우현의 오른쪽 보디 블로우에 바로 링 바닥에 쓰러질 테니. 관장이 말했다. “정두홍 감독이 올해 쉰넷이다. 저 나이에 저 정도 하는 것도 대단하다.” 나는 정두홍 감독과 동갑이다. 우현은 어려울 듯하고 3개월 뒤 정두홍 감독과 스파링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3개월 뒤 정두홍 감독을 이길 수 있을 듯하다. 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지 않나. 이제 나흘째인데 이 정도 호기는 뭐 괜찮지 않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