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퇴사 썰을 풀어본다 근데 이제 러브레터를 곁들인
오늘의 마감 근무를 마쳤고, 내일은 휴무일이다. 그리고 내일이 지나면 나는 더이상 스타벅스 소속이 아니게 된다.
2019년 8월 대학교를 졸업했다. 백수가 되었고 취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당시 나는 빠른 시일 내에 독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라 오래 일할 사람을 뽑는 정규직에 지원하기가 영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만 벌 수도 없는 일이었고. 여러 탕을 뛰자니 독일에 가기 전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따두기 위해 공부를 하려면 시간을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스타벅스였다. 대담했지. 카페 아르바이트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스타벅스라니. 처음 면접을 본 A 매장의 점장은 5년째 골드회원이라는 내 말에 ‘그럼 스타벅스 메뉴나 어플은 잘 알겠네요?’ 라며 반가워했다. 2차 면접에서 만난 지역 매니저는 서비스 경험이 전무한 나를 탐탁지 않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쨌든 나를 합격시켜주셨다. 그렇게 A 매장에 출근하게 되나 했더니 B 매장에서 전화가 와서는 그곳으로 최종 발령 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B 매장이 집에서 멀어서 걱정했는데 매장으로의 첫 출근 하루 전날 C 매장에서 전화가 왔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C 매장에서 1년 5개월의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게 된 C 매장은 신입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매장이었다. 작지 않은 규모의 2층 매장인 데다 단독 건물이라 화장실이 내부에 있고 심지어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었다. 이 말은,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고 두 층짜리 매장을 쓸고 닦아야 하며 일반 코어 매장과 달리 해야 할 업무가 하나 더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일한 매장은 주택가에 뜬금없이 자리 잡은 곳이어서, 처음에는 왜 여기에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있지? 장사가 되긴 하나? 싶었는데... 아주 잘 되는 곳이었다. 실제로 매출이 높은 편이기도 했고, 작년 여름엔 주말 시간대 매출을 들을 때마다 동료들과 ‘와, 그만큼씩 파니까 힘들죠!’하며 헛웃음을 짓곤 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매장 내 취식을 꺼렸고, 그래서인지 드라이브 스루 매출은 더 높아졌다. 주말이면 주차장 바깥까지 줄이 길어지면서 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서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헤드셋을 처음으로 착용하고 며칠 동안은 차량 진입 시에 들리는 비프음을 환청처럼 듣기도 했다.
꽤 오래 스타벅스를 이용해온 고객인 나는 스타벅스의 톤과 말투를 알고 있었다. 스타벅스의 까다로운 커스텀 시스템도 친숙했고. 그러니 포스 업무쯤은 가볍게 적응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일하는 사람으로 기계 앞에 서니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잘 다독여주고 실수를 수습할 기회를 준 선임들 덕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지금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선임들이 얼마나 갑갑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설 연휴에 분명 대기시간 1시간이라는 데도 괜찮다고 결제해놓고 30분 뒤에 와서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취소하라고 성질내는 사람(그러니까, 말씀 드렸잖아요). 레디백 입고일 아침이면 출근길의 나를 붙잡고 몇 개 들어왔어요? 차에서 받아도 돼요? 핑크색 몇 개예요? 묻던 매장 밖의 사람(저 아직 출근도 안 했거든요? 부장이 출근도 전에 업무 전화 걸면 좋으시겠어요?). 원하는 색상을 받지 못했다고 나한테 삿대질을 하며 책임지라던 사람(차에서 받을 수 있냐고만 물어보셨잖아요, 색상 선택은 안 물어보셨고). 프리퀀시 모은다고 매장 마감 30분 전에 와서 블렌디드 아홉 잔 시키고 안 가져가서 다 버리게 만든 사람(당신 자식들에게 쓰레기 지구를 물려주시려는 건가요?). 전자출입명부 작성 요청할 때마다 들었던 욕지거리(저라고 좋아서, 심심해서 해요? 정부방역수칙이라 대통령이 와도 시킬 건데요?). 주차장에 차 대놓은 동안 송홧가루 날려서 차 더러워졌으니 세차비 달라며 말도 안 되는 컴플레인으로 황당하게 만들던 사람(우리가 심었나요? 땅 주인이 심었지...) . 정말이지, 하루라도 기분 상하지 않고 퇴근하는 날이 없었다. 매일 한탄을 늘어놓는 나를 견뎌준 가족들과 연인이 아니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돌아보니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나는 좀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며 삶의 태도를 배웠던 것 같다. 반면교사에는 참 좋은 직업이었다.
힘든 일에 비하면 적었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한가한 틈을 타 슬리브에 ‘안전 운전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등의 문구를 적어 음료를 제공했다가 칭찬 VOC를 받기도 했고, 드라이브 스루로 방문한 고객이 ‘이거 쓰레기 아니에요. 하루 종일 말하시려면 목 아플 텐데 사탕 하나 드세요.’ 라며 건네준 알사탕을 받기도 했다. 작년 7월엔 파트너들끼리 추천하는 머그상을 받기도 했다.
일에 적응하면서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근무의 고단함을 날려 보내기도 했다. 전날 마감 파트너가 남긴 귀여운 메모들, 호퍼에 원두 한 봉지를 쏟아부을 때면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원두 향, 텅 빈 매장 2층에 들어오는 따뜻한 빛, 한가한 시간에 연습하는 라떼아트와 오늘의 커피 원두가 바뀔 때마다 새로 꾸민 원두 보드, 해 질 녘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 종종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노을빛, 다음날 준비가 끝난 바를 마지막으로 돌아볼 때의 안정감, 파트너니까 가능한 나만의 레시피. 그날이 얼마나, 왜 힘들었든지 간에 짧은 순간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도 분명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동료복이 있는 사람이었다. 함께 일한 사람들이 참 좋았다. 스케줄 조정에 있어 편의를 많이 봐주신 점장 T 덕분에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한결 수월하게 취득할 수 있었고 연인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2019년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함께 일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명랑한 목소리의 부점장 C와 함께 일하면 화창한 여름날이 떠오르곤 했다. 알고 보니 대학 동문이었던 친절하고 재주 많은 수퍼바이저 S와 처음으로 포스 업무를 가르쳐준 동갑내기 수퍼바이저 M이 아니었다면 동료들에게 쉽게 애정을 느끼지 못했겠지. 처음으로 휘핑 짜는 법을 가르쳐준 수퍼바이저 L, 내 손을 붙잡고 라떼아트 하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수퍼바이저 R이 아니었다면 바 업무에 적응하는데 훨씬 오래 걸렸을 거고. 어느 여름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CS업무를 보던 나에게 수퍼바이저 E가 "제니스, 이제 진짜 일 잘하네요." 라고 해주지 않았다면 그 시기의 슬럼프로 진작 퇴사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매장의 아이디어 뱅크이자 당당한 태도가 언제나 인상적이었던 수퍼바이저 L, 함께 하는 마지막 근무가 끝난 뒤 온갖 덕담을 다해준 친절한 수퍼바이저 H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벌써 그립다. 며칠 전 나를 보자마자 ‘제니스! D-3! 나 속상해!’ 하며 아쉬워해서 나를 울컥하게 했던 귀여운 수퍼바이저 J와의 근무는 늘 유쾌하고 즐거웠다. 일주일 전 근처의 다른 매장으로 전배를 간 우리 매장의 터줏대감 같았던 바리스타 Y를 보며 고객으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그자리에서 훌훌 터는 마음가짐을 배웠다. 나보다 3개월 늦게 들어왔지만 그저 입사 동기 같은 다정한 바리스타 Y와 무조건 버티고 그만두지 말라고 협박(?)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마주치면 매번 주먹인사를 하는 바리스타 J가 매장에 있으면 어딘가 안심이 되고 든든했다. 언제나 웃으며 나를 비롯한 파트너들을 반겨주고 스타벅스에 어울리는 친절함을 보여주는 바리스타 M을 보며 서비스의 기본자세를 배운 날이 많았다. 근무가 자주 겹치진 않았지만, 고객에게 하듯 파트너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다정한 마음씨의 바리스타 L과 함께 일하면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위로가 되곤 했다. 나보다 먼저 갑작스레 그만 둔 지 좀 지났지만, 귀여운 바리스타 R은 내 마음엔 우리 매장 막내로 오래 기억 될 것 같다.
처음 입사하고 3개월은 내가 입사 순으로도 발령 순으로도 우리 매장 막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T와 수퍼바이저 R을 제외한 모든 파트너들이 내 입사 후 매장으로 전배를 왔거나 새로 입사한 파트너들이다. 많은 사람이 떠나고 또 새로 오는 동안 나는 계속 제자리에 있다보니 일이 지겹고 고되고 힘든 날도 참 많았다. 그럼에도 함께 한 사람은 늘 좋았던 곳. 아쉬운 마음을 안고 510일의 근무를 끝으로 떠난다. 준 것도 없이 받은 마음이 많아 떠나는 발길이 많이 무거웠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1년 5개월을 함께한 우리 매장 파트너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러쉬는 짧게, 진상은 더 적게 오는 근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