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잊어버렸다.

by 시선siseon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하며 저녁 먹으러 나가는 길이었다.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걸어 모퉁이를 돌아 내 차가 있는 곳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야, 저거 내차 아니야? 차 문이 열려있어!


통화하던 상대방에게 소리를 질렀다. 맥락 없는 당황한 목소리에 상대방은 어안이 벙벙한지 잠시 말을 멈췄다.


- 뭐라고? 얘가 지금 뭐래는 거니.


오르막길에 주차된 내 차의 운전석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활짝. 안 잠긴 정도가 아니라 문짝이 활짝 열려있는 상황. 짧은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쳤다. 도둑맞은 건가. 차에 고장이 생겼나. 설마.. 내가 저렇게 열어놓고 간 건 아니겠지.


당황해서 전화를 끊을 생각도 못하고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로 차로 뛰어갔다. 그리고 차키까지 컵홀더에 떡하니 놓인 것을 보고선 깨달았다. 아. 내가 그랬구나. 아침 출근길에 운전하면서도 통화를 했었다. 그리고 주차를 했지. 통화는 이어졌고 나는 휴대폰을 챙기고 짐을 챙겨 차문을 열고는, 통화를 계속하기 위해 휴대폰을 귀에 대고 내렸다. 그리고.. 갔다. 연구실로. 당당히.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통화에 심취하여. 뭐 그리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재잘대며 그대로 가버렸다. 그리곤 저녁 먹으러 나가겠다며 차로 돌아와서야 그렇게 차 문이 열린 채 6시간이 넘게 방치된 내 차를 다시 목격한 것이다.


- 이건.. 아무리 나라도 너무 심하잖아.


옆에는 10살이 넘게 어린 학생이 놀란 나를 보고 더 놀란 채 서있었다. 일단 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러나 그 충격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 내가 평소에 좀 덜렁대긴 하지. 잘 잃어버리기도,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조심도 하잖아. 나름 챙긴다고 챙기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차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잊는단 말인가.


그 사건 이후 저녁 내내 우울함이 떨쳐지질 않았다. 내 안의 어떤 프로세스들이 모두 둔해지는 것 같은 기분. 찰나같이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내 안의 시계만 거꾸로 가는 기분. 이렇게 점점 느려지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멈춰 서 버릴 것 같은 불안감. 활짝 열린 채 서 있던 내 차를 본 장면이 머릿속에서 당최 지워지지 않았다. 나 아직 30대인데. 어떡하지. 더 총명해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더 느려지고 싶지는 않을 뿐인데.


하루 종일 사소한 실수를 챙긴 탓이었는지 더욱더 기운이 나지 않는 밤. 짓눌린 마음의 무게를 덜어보고자 향긋한 고량주를 얼음컵에 부어 들고 그저 습관일 뿐이라고, 남들보다 좀 더 챙기는 습관이 부족할 뿐이라며 애써 마음을 다독여 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더욱 부산히, 강박적으로 나의 행적을 챙기는 수밖에 없겠지. 휴우. 어느 것 하나 쉬워지는 것이 없다. 삶은 역시 고달픈 것. 그러나 고달픈 만큼 또 찰나의 행복이 찾아와 주길 바라며, 고량주를 또 한잔.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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