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공중전화에 10원짜리, 50원짜리를 넣고 녹음된 음성을 들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삐삐조차도 사치품이라 음성 사서함이 소통의 전부였던 시절, 공중전화 안은 또 다른 하나의 세계 같았다. 그 나이 때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부모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곳. 친구도 없고, 형제도 없고, 모든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나의, 그리고 우리의 언어를 녹음하고 전달하던 곳. 좁디좁은 그 공간이야 말로 그렇게나 자유롭고 설레던 공간이었다.
사실 내뱉는 말이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치 않았다. 사소한 애정 표현 조차 서툴기만 했던 어린아이들에게 사랑의 밀어란 기껏해야 어딜 갔다, 무엇을 먹었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니 역시, ‘어떤’ 대화를 주고받느냐 보다 무엇이든 ‘대화’를 남몰래 어떤 공간에서 녹음하고, 그것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이 더 특별했다.
그리고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가는 동안의 설렘. 혹시나 했던 메시지가 정말로 있었을 때의 희열. 제한된 시간 속에 꾹꾹 눌러 담아진 타인의 목소리를 적당한 기계음으로 변조되어 듣는 그 찰나.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나만의 비밀이라도 생긴 양 달뜬 얼굴로 공중전화 부스의 무거운 문을 열고 나오곤 했다.
요즘, 차를 타면 자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모든 타인으로부터 단절된 공간에서 혼자임을 만끽할 법도 한데, 혼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을 찾는다. 홀로 운전 중인 차 안은 나에게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타인에게 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마음껏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날것의 나를 드러낼 수 있다. 혼자인 공간, 그리고 타인. 나이를 먹었어도 마음을 터놓는 방식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에겐 여전히, 공중전화 부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