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많은 것을 꿈꾸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을 타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것이 심지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가능한 일일 수 있다는 것에 가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 내가 궁금한 주제를 연구하는 해외 학자들을 그들의 저술을 통해 만날 때마다 내가 가본 적 없는 대륙에 있는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번 신기하고 놀라웠다. 유학을 가고 싶다는 꿈을 꾼 이유는 그것이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단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외국인들'이 사실은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래서 왠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만큼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유학을 준비하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하필이면 또 저널리즘이 전공이었던 탓에 학교들은 너무 높은 영어 실력을 요구했다. 게다가 주변에 같은 전공으로 유학 간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주먹구구식으로 준비하다 보니 그 어떤 융통성도 요령도 없이 그저 혼자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년 여 가까이 준비했던 유학은 단 한 군데 원서를 넣어보는 것 만으로 초라하게 마무리된 채 국내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유학을 갈 수 있는 루트라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유학을 준비하는 공대생, 예대생들과 섞여서 그저 영어공부만 잘하면 갈 수 있는 것인 줄 알았고, 그래서 죽자 사자 영어공부에만 매달릴 만큼 순수했다. 설사 덜컥 오라는 곳이 있었더라 한들, 그 학비는 어떻게 감당했을 것이며 외국생활을 막연히 친구 사귀기 정도로 여겼던 단순함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타지 생활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그러나 막상 그때 닥쳤으면 어떻게든 해냈을 것도 안다. 유학을 준비할 때의 그 무모함과 열정이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해도 해냈을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연구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던 원대한 꿈은 이제 이미 잊힌 지 오래다. 아직 연구계에 있기는 하지만 내가 그들만큼 못할 것이 뭐야? 하던 자신감은 이제 많은 것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때의 자신감은 아마도 내 삶 자체가 가졌던 '치열함'에서 왔던 것일 테다. 두 평짜리 고시원에서 삼각김밥으로 버티며 공부하던 시기의 절박함과 치열함은 전 세계 어디에서 무엇을 한다고 해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 같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두려움이 많아진 것은 한 가지 일에 그만큼의 열정과 치열함을 쏟은 지가 이미 아마득 하기 때문이 아닐까. 육아가 밀고 들어온 일상에서의 치열함이란 그저 매일의 체력의 한계, 잃어가는 커리어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꿈을 향해 가고 있는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다. 왜 나는 그렇게 순진하고 나태했을까. 감히 육아를 이렇게나 우습게 봤다니. 육아 시작 후의 일상이 이렇게나 바뀔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다음에 시작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가득하다.
그러나 그 후회는, 나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육아가 일상에 가져다주는 변화, 특히 일에 미치는 영향은 겪는 사람들 모두에게 일정 부분 공평하다. 그것을 어떻게 인생에서 흡수하고 소화해내느냐는 역시 개인이 그동안 쌓아온 역량, 혹은 그 후에라도 쌓는 역량에 따라 다를 것. 나 또한 먼 훗날 지금의 순간을 돌아봤을 때, 두려움만 많았던 시기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일이 아니면 무엇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다. 그래서 우연히 접했으나 오늘 나에게 더욱 와 닿았던 말, "지금이 아니면 언제?"를 다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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