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격

by 시선siseon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어쩌면 예정된 한계였을까. 나는 처음부터 나를 믿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육아와 집안일에만 전념하고 지내면서 일상에 만족할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결국 관계의 불화로 터져 나왔다. 나 자신이 충만하지 않을 때는 결국 상대방을 배려할 여력 따위가 사라지고 만다. 상대방의 시선이 아니라 오직 내 시선만이 존재하는 시간들. 머리로는 모든 상황과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결국 잔뜩 울퉁불퉁 불안해진 감정선에 인내와 배려란 없다.




예상된 한계임에도 말 그대로 '한계'이기 때문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회복되어야 하나. 의무감만이 존재하는 삶. 물론 의무를 다하는 대가로 아이의 해맑은 웃음과 성장, 누군가의 안정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일상의 의미를 채우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을, 저 죄 없이 순수한 아이를 두고 다시금 확인해야 하는 이 고통.



이렇게 방심하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엄마의 자격'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세상의 시선과 그 시선을 기준으로 한 평가와 비관, 죄의식. 아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야. 네가 예쁘지 않아서가 아니야. 너는 너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 자체로 충분하단다. 다만,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에는 애당초 '마을 하나'가 필요한 법이거든. 엄마는 평범한 사람이라, 혼자서 마을 하나만큼의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거란다. 그래서 힘이 부치는 건 당연한데, 이건 한편 엄마의 욕심 때문이야. 모든 순간 네가 완벽한 보호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욕심. 너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지 않아도 잘 자랄 텐데, 엄마는 자꾸만 불가능한 욕심을 부려 스스로를 학대하고 불안해하는구나.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할게. 그리고 그 최선을 위해서 엄마는.. 너와 함께하는 시간 말고도 다른 것이 필요하단다. 엄마 자신이 충족되고 행복해지지 않으면 엄마는 엄마 자신에게도 한 줌 마음씀 조차 할 수가 없거든.


보통 일상에서 한계가 찾아오면 책으로 도망쳤다. 그래. 책이다. 이렇게 강제된 글쓰기가 아니고서야 글을 쓸 여력조차 없을 때, 그것이 제일 나았다. 나의 상황을 점점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늪으로 빠져드는 대신,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의미 없이 눈동자를 굴리다 보면, 어느새 책이 가져다주는 다른 세계, 다른 이의 시선으로 잠시 주위를 돌릴 수 있고, 그 잠깐의 틈이 더 이상 부정적 감정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고 그 순간들을 넘길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어차피 장르 따윈 상관없다. 내 일상이 나로부터 잠시 잊힐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이런 명백한 '불행 해소 기제'가 존재해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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