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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19. 2022

전쟁의 끝, 마감의 달콤함

음악을 튼다. 생각해보면 참 음악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공간을 채우는 역할로서의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딱히 좋아하는 가수, 장르, 곡 등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 분위기에 맞게 선곡된 곡이 좋고, 들었던 곡을 반복해서 듣는 경우보다는 새로운 곡을 듣는 것을 선호한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겨울에 홀로 카페에 앉아 듣기 좋은 POP"이다. 적당히 감미롭고 그루비한 음악들이 썩 마음에 든다. 이름 모를 DJ께 감사. 


역시, 마감의 맛은 달콤하다. 마감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가는 마감 직전까지 받았던 스트레스의 양과 적절히 비례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꼭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아니어도 마감은 그 자체로 참 달콤하다. 늘 머리를 쥐어짜서 일을 하다 보니 일을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어떤 흐름으로, 어떻게 마감될지가 명확하지 않다. 어떤 주제에 관한 분석을 해야 할 때 보통 처음 느끼는 감정은 이러하다. "내가 뭘 안다고". 그래서 찾기 시작한다. 자료에서 자료, 글에서 글과 그림, 무한한 인터넷 세상을 뒤지며 현 상황에 쓸모 있는 정보들, 보이는 정보 뒤에 숨겨진 맥락의 실마리를 쫒는다. 운이 좋으면 키key가 되는 자료를 금방 찾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뒤져도 허탕이다. 관련 자료를 읽은 것만 해도 수백 페이지는 넘을 텐데 아직도 머릿속이 텅 비었다면 그날은 그냥 망한 거다. 


어차피 95%의 기존 자료와 5%의 오리지널리티로 승부하게 되어있다. 그렇지만 5%의 오리지널리티가 나오려면 95%의 기존 자료가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정렬되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스토리 라인'은 어디서든 유효한 것이다. 그 스토리라인을 뽑으려면 그래서 일단 텅 빈 머릿속을 좀 채워야 한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닌데, 반복되는 자료들을 보다 보면 '정보가 있는 자료'와 '정보가 없는 자료'가 구분된다. 정보가 있는 자료들을 다시 훑어보면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점들을 확인해본다. 그렇게 타인의 관점들과 논쟁을 통해 의문이 생기면 그것이 시작이다.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고 결국 스토리라인의 초안이 나온다. 


보통 그 초안은 마구 휘갈겨져 있다. 지금 떠오르는 그 작은 생각, 차별성이나 어떤 시각이 담긴 그 생각이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휘발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단 마구 적는다. 그 순간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적는 것이 먼저다. 정제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니까. 그리고 나면 그 메모 한 장, 휘갈겨진 한 장을 부여잡고 거기 적힌 초안을 자료들로, 글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앙상한 뼈대에 하나 둘 살을 붙여나가서 기승전결이 완성되면 드디어 작업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렇게 마감을 하고 나면, 그래서 완성본을 내보내고 나면 휴우, 하고 안도한다. 그때의 기분은 그래도 어떻게든 해냈구나. 정도인 것 같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런 확신이 있으면 좋을 텐데 늘 시작 시점에서는 왜인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완성본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 모호함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그분이 오시는 순간'을 기다리며 무한히 자료들을 읽고 있을 때 - 그리고 그런 서치의 과정은 보통 어떤 기록으로 남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 굉장한 막막함을 느낀다. 그래서 결과물이 나왔을 때 스스로 좀 놀라는 것 같다. 그렇게 막막하더니 그래도 이렇게 결과물이 나왔구나, 하는 뭐랄까. 일종의 '신기함'이랄까. 


수많은 작업들을 통해 분명 내 안에 쌓인 것이 적지 않을 것인데도 언제나 일을 대할 때 기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것 같은 부담과 압박감이다. 그렇지만 굳이 좋게 말하자면, 그래서 창조했을 때의 짜릿함이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이 바로 전쟁의 끝, 마감의 달콤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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