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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24. 2022

한 뼘 만큼의 행복

절망 속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소중했던

한 때 집에서 직장까지 차로 출퇴근했던 적이 있다. 보통 30분에서 길면 40분 정도 거리의 운전이었는데, 나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차 안에서 하는 일은 보통 세 가지.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듣거나, 통화를 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달랐지만 특히나 혼자만의 공간이 여의치 않았던 시절에 그 시간은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혼자인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이어폰을 꼽는 것 보다도 더 좋다. 특히나 고속도로, 외곽 순환도로 등을 달리던 나는 원 없이 볼륨을 키우고 달리곤 했는데, 그때 느껴지는 해방감이 있었다. 사실,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이는 것과는 또 다른 공간감이 있지 않나. 그런데 차 안이 아닌 어느 공간에서 소리를 맘껏 키울 수 있단 말인가. 공간을 꽉 채우는 음악의 한가운데 존재할 때 느껴졌던 충만함,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그리고 팟캐스트. 정치비평이든 오디오북이든 각종 이야기 손님들이 떠드는 수다를 들으면서 웃기도, 울기도 하면 시간이 그렇게 잘 갈 수가 없었다. 꽉 막힌 도로를 한 시간 운전해야 할 때면 팟캐스트가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었다. 그리고 팟캐스트가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푹 빠져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기에도 차 안은 완벽한 공간이었다. 


통화를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였는데, 하나는 주로 매우 가까운 지인들과 스스럼없는 통화를 할 때 주변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일과 중에는 그렇게 긴 수다가 보통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지인들은 나의 출퇴근 전화를 종종 잘 받아주었고, 통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하는 그 시간의 통화들은 적당히 안부만 묻는, 혹은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마음을 나누는 대화들이 되어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 주었다. 


그러니까 사실 오롯이 혼자일 수 있었던, 규칙적이고 반복된 시공간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시기의 나에게 혼자만의 시공간이 딱 그만큼 밖에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감자에게 허락된 따스한 햇볕이 하루 한 시간, 고작 한 뼘이라면 어찌 그 수감자는 그 한 뼘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오늘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있어 팟캐스트를 들었다. 사실 이제는 혼자인 시간과 공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일상을 살고 있다. 음악과 팟캐스트, 통화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져 버린 탓 인지, 오롯이 집중해서 팟캐스트를 듣는 일 자체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생각났다. 매일매일 차 안에서 보냈던 그 시간들이. 수많은 제약들 속에서 고작 그정도의 간신히 숨 쉬는 시간으로 버텼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는데, 그 와중에도 나에게 이런 반짝이는 추억이 남았구나, 하고.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그 추억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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