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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23. 2022

어디에서 성취감을 느끼십니까

성취감의 기준

오늘은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평탄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기운이 없어서 그냥 낮잠을 자는 쪽을 택했다. 평소 같았으면 저녁이 다 된 시간에 깨어났다면 하루 종일 잠만 잤냐며 또 스트레스받아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자고 일어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내려놓으려고 해도 생산성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내가 오늘만큼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니. 어지간히 마음이 짓눌려 있긴 했나 보다. 


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 부럽지 않다. 물론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좋겠거니 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지옥을 하나쯤은 품고 있기 마련이고, 그 지옥은 자금력과 무관하게 온다.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할 수 없는 것은 각자의 마음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전부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느냐, 혹은 가진 것과 무관하게 현재 자신의 상태에 얼마나 만족하느냐가 결정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러니까, 돈에 관해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진심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일에 대해서는, 성취에 대해서는 이렇게 내려놓을 수가 없느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성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취할 것인가. 그러니까 일단, 안정된 삶보다 성취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비관하지는 말자(거기서부터 원인을 찾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으니, 그냥 성향인 걸로). 그런데 그 성취와 관련해서 내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영향력'이라는 또 다른 키워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육아도 성취고, 집안일도 성취고, 혹은 취미생활이나 어떤 관계를 통해서도 성취가 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성취에는 영향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일 때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공공의 영역에서 일하는 것은 그 일의 목적 자체가 사회의 어떤 영역이 잘 유지되게끔, 혹은 더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니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이 누군가에게 더 나은 일상을 주는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에 매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첫 직장에서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본다. 첫 직장이 대학 연구소였던 나는 소장님을 따라 종종 장, 차관들이 참석하는 국가 정책회의에 참석하곤 했다. 거기서 하는 일이라곤 회의록을 적는 것뿐이었지만, 그 현장에서 결정되는 무언가가 가지는 영향력의 무게를 실감하는 것이 사회 초년생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때로는 동경하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 실망스럽기도 했던 그 모든 정책 결정의 과정이 아직도 내가 가진 일에 대한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글을 쓰는 일도 사실은 독자에게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내 글의 영향력을 이야기하기엔 그 글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이 극소수의 감정을 위로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슬퍼한다는 것 자체가 비교대상이 잘못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루고 싶은 성취는 사실 기준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떤 성취를 이룰 것인가. 성취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다시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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