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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26. 2022

명대사의 배신 - 제리 맥과이어

다시 보는 명작, "당신이 날 완성시켰어" 제리 맥과이어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발견한 멘트였다. 제리 맥과이어가 나오고 있었고, 그 아래 그 영화를 소개하는 단 한 줄이었다. 당신이 날 완성시켰어. 아, 저게 저 영화의 명대산가보다. 로맨틱 영화의 정석인가 봐.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나는 안 봤네? 하고 영화의 중반쯤부터 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브리짓 존스의 르네 젤위거가 쟤 맞아? 하면서. 풋풋한 톰 크루즈와 르네 젤위거를 감상하면서.


생각보다 영화는 대책 없는 로맨스가 아니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순수한 여자와 너무나 예쁜 아이. 자신을 향한 '신의'에 대한 대가로 Will you merry me를 내뱉는 남자라니. 이미 사랑을 한 번 실패한 여자에게 사랑이 아닌 책임감으로 하는 청혼은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그쯔음부터 심기가 뒤틀린 나는 이게 무슨 명작이라고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대사의 장면. 일로 성공한 그 순간에 그것을 공유할 사람으로 가장 먼저 그녀가 떠올랐기에 남자 주인공은 다시 여자 주인공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대사를 내뱉는다.


"You comlete me."


단 1의 감동 없이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그다음 대사를 듣고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르네 젤위거의 답.


"You had me at hello."

  

미친  아닌가. 나는  순간 잠시 화가 치밀었다가, 슬펐다가, 기가 차고 다시 슬펐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였다. 자신의 사랑에 마지못한 책임감으로 결혼을 청한 남자. 그래서 자신을 가장 불행하게 만든 남자가 찾아왔는데 여전히 그녀는 그가 나타났다는 사실 만으로 마음이 속수무책이다. 자신의 사랑을 주체할  없는 멍청한 여자. 영화에서도 중간중간 그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이 바뀌어봤자 얼마나 바뀌겠냐고. 그걸 모를  없으면서, 심지어 결혼을   겪어본  딸린 싱글맘이면서 여전히 얼굴만 보면  모든 것을 용서할 만큼 속수무책 그를 사랑하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여자다.


그러길래, 이미 결혼생활로 한 번 당해놓고도 정신 못 차리는 여자를 보니 화가 치밀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딱딱해지지 않는 심장에 공감이 가서 슬펐다가, 그러니까 역시 '자기 팔자는 자기가 꼰다'는 말이 생각나서 기가 찼다가, 결국 자신의 사랑에만 충실할 수밖에 없는 저 마음에 다시 슬펐다. 저 한 대사, "You had me at hello"가 너무나 그런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너무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저만큼이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너무나 희귀한 일이다. 그 벅찬 감정.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초월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으로 자극적이고, 너무나 멋진 일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겪을 모든 감정과 경험은 인생을 걸어야 할 수 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 걸까. 그 사랑의 끝에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혹은 그런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도 있는, 자신도 그런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 모든 기회를 포기하는 것 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사랑을 하고 불행해지는 것이 그런 사랑조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보다 나은 것은 확실한 걸까.  


불같은 사랑. 그 순간만으로 영원할 수 있다면. You had me at 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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