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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26. 2022

돈이 가치가 없다

신랑이 나갔다 와서는 50만 원을 내민다. 거래처 사장이 아기 용돈으로 줬다며. 그리고 우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주 본다. 허허허. 돈의 가치란. 


돈의 가치가 없다는 말을 자꾸만 한다. 월급쟁이 월급은 너무나 뻔한데, 그 노동의 대가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지는 느낌이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감사한 돈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쪼개고 쪼개어 쓰는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가 없는데, 이것과 저것 두세 가지 하기에도 월급으론 어림없는 느낌. 


얼마 전 엄마랑 오랜만에 백화점을 가서 옷을 둘러보다가도 그랬다. 가디건 하나 잡으면 30만 원, 코트하나 집으면 100만 원. 무슨 내로라하는 명품도 아니고 국내 평범한 브랜드 같았는데 그랬다. 자라, H&M, 에잇 세컨즈 등등 스파 브랜드 가격에 너무 익숙해졌나, 사실은 다들 이 돈 주고 옷 사 입는 건가, 어리둥절하던 찰나였다. 매장에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둘이 들어왔고, 익숙한 듯 몇 개 옷을 보더니 입어보지도 않고 계산대에 옷을 올렸다. 112만 9천 원입니다. 그렇게 그녀들은 엄마가 옷을 입어보러 들어갔다 채 나오기도 전에 쇼핑을 마치고 나갔다. 


굳이 부동산, 집값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이미 일상에서 돈의 가치에 대한 감각이 종종 혼란스럽다. 50만 원이면 기본시급으로 따지면 누군가는 일주일을 일해야 하는 돈인데 자본소득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누군가는 저렇게 아기 용돈 하라며 그 돈을 내밀고, 그 사장과 두 시간 동안 마신 술값은 그 돈의 배가 넘으니. 물론 부자야 옛날부터 없었겠냐마는 이제는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너무 자주 돈에 대한 감각이 나와 다른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내 주변만 딱히 그런 것은 아니겠지. 


돈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질수록 돈에 더 초연해진다. 있어봤자 쓸라치면 없을 때만큼이나 물처럼 흐를 돈인데 싶다. 노동 없는 자본의 시대에서 돈의 가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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