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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27. 2022

그 시절의 맥주 한 잔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가장 맛있었던 맥주 한 잔을 물으면 나는 대학원 시절의 노동주를 떠올린다. 유학을 준비하네 뭐네 한참 혼란한 시기를 보내다가 들어간 대학원이었다.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흥미는 있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맘 졸이며 지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같은 캠퍼스에서 대학원에 재학 중인 친구가 있었다. 넓고도 넓은 캠퍼스에서 내가 있었던 사회대와 친구가 있었던 이공관은 멀고도 먼 길이었지만, 우리는 만나고자 하면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저녁을 매점에서 대충 때운 날이면 9시쯤 슬슬 출출함이 몰려왔는데, 그때 서로는 최고의 일탈 대상이었다. 대충 마무리했나?를 물으며 시작된 대화는 사이좋은 퇴근으로 이어졌고, 그럴 때면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딱 한잔만'의 맥주집을 들르는 코스로 이어졌다.


그저 그런 대학가의 맥주집이었다. 500미리 생맥주 한잔에 2500원. 맥주 두 잔에 가벼운 안주를 하나 시키면, 우리는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한 잔을 시원하게 원샷하곤 했다. 사실 원샷까지 하는 날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던 날이고, 어느 날은 그저 한 모금에 행복해졌다. 이 한 모금을 먹기 위해 오늘 하루를 보낸 거 아니겠냐며, 연신 술꾼 마냥 '캬~'를 외치는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했다. 같은 대학원생의 대화라 해봐야 뭐 별 거 있었으려고, 늘 뻔하디 뻔한 타령이지만 해도 해도 도무지 지겨워질 생각이 없던 그 타령들. 초중고를 거스르는 추억 여행에, 동창 소식에 수다를 떨다 오늘 안 풀린 논문 이야기, 교수님한테 까인 이야기, 평범이랑 거리가 먼 대학원 선후배 이야기,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사랑타령까지 하루 종일 묶였던 입이 맥주를 꿀떡일 때 말곤 쉴틈이 없었던 그 수다의 시간들.


그 시절의 기억은 그래서 늘 맥주 한잔과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 이 추억이 유난히도 생생했던 이유는 명절을 맞아 귀향한 고향에서 그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각자 가정이 생기고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는 명절마저도 시간 맞추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던 친구들이었다. 원래 같이 어울렸던 친구까지, 오롯이 세 명의 친구가 다시 뭉치는 건 몇 년 만인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만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10대의, 20대의, 30대 어느 시절이라 해도 무방할 그때의 우리로 돌아갈 것이다. 떨어졌던 시간들에 비하면 만나는 시간은 턱없이 짧을 테니 1분 1초를 아껴 놀아야지. 이렇게 설레 하며 만날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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