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이 만나면

by 시선siseon

지난주에 집어 든 책은 이별 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든 이번 주의 책이 시작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조금 당황했어요. 마치 소화기관의 기나긴 장기를 이어 붙이듯이, 끝을 끌어다가 시작에 다시 이어 붙이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더욱 명백했어요. 시작이 존재하면 끝이 존재하고, 끝이 존재하면 시작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이요. 이렇게 평범한 상식을 정말로 혁혁히 체감한다는 것은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면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인생의 가르침을 하나, 얻은 것과 같아요.



처음의 설렘은요, 사실 그 간질간질한 감정은요, 매우 열심히, 최선을 다해 누려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열 번 혹은 스무 번, 봤던 영화를 또 보듯이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재생하고요, 그때의 감정을 기록도 하고요, 그걸로 할 수 있으면 아예 소설도 한편 쓰구요, 그 장면을 그리기도 하고요. 여하튼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거예요. 그것은 정말로 시작하는 그 한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매우 강렬한 감정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기록된 것들을 인연의 마지막 날을 기록한 기록물들과 같이 보는 거예요. 그렇게 시작했던 인연에 마침표를 찍은 날. 그날을 복기한 무언가와 함께. 그렇게 하면 마침내, 정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저 명백한 진실을요. 처음이 어떠했다고, 혹은 어떠했다 한들 끝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이건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 매 순간이 사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과 데칼코마니 같아요. 인연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매 순간, 사실 그 모든 인연의 순간은 이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죽음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시련들이 좀 더 쉽던가요. 그러니 이별로 다가가던 그 모든 순간도, 그리고 마침내 이별이 온 순간에도 무엇 하나 쉬운 것은 없죠. 그렇지만 또 한편, 그렇게 시작과 끝을 이어 붙이고 나니 인정하게 되지 않던가요. 정말이었어요. 정말로 시작은 끝으로 귀결되고, 삶 또한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요. 한 가지 위로가 된다면 시작이 끝으로 귀결되는 사람과의 인연은 원한다면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죽음으로 귀결되는 삶은 그럴 수 없잖아요. 그렇게 배우는 거죠.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작과 끝 중에 가장 시간 간격이 넓은 사건 - 탄생과 죽음 - 도 반드시 일어나고, 그러기에 그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를 새롭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참, 너무 멀리 갔군요. 당장 눈앞에 오늘도 끝난 사람과의 인연이 피를 흘리고 서 있는데 삶과 죽음이라니요. 이렇게 생각하고 무뎌지는 것이죠. 사실은 삶과 죽음의 시작과 끝을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일 텐데.



그러니까요. 시작과 끝을 이어 붙이면 가장 놀라운 것이 그 온도차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온도차가 느껴지면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온도차를 더욱 크게 만드는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온도차를 기꺼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서 언제고 차갑게 식을 심장이지만 지금은 터질 듯이 뜨겁게 뛰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러니 어차피 차갑게 식을 것을 너무나 명백히 인지한 나머지 뜨거워지지 조차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기를요. 어차피 끝과 시작을 이으면 무한히 반복될 하나의 고리로 탁, 떨어지고 말 것을. 그 끝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혹은 그 시작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굴지 않기를. 그리하여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에 오히려 감사할 수 있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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