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봤던 영화의 끝장면 즈음에서, 인간 세상의 중요한 무언가가 자꾸만 사라지는 장면을 봤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후각과 미각이 사라진 다음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식당에 갔다. 냄새를 맡을 수도, 맛을 느낄 수도 없는데 여전히 식당이 매우 북적였다. 서빙된 음식은 그래서 '먹기'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보기'위한 음식에 가까웠다. 작품 마냥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접시를 채운 음식들. 맛이 중요하지 않은 이상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다른 어떤 감각의 욕구라도 채우려 하겠지. 그것이 시각이었던 것이고(영화에서는 곧 색깔마저 사라져 흑백 세상으로 변해버리고 말지만).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은 지금 내 처지와 비슷해서다. 치이익- 고기를 굽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그 옆에 서있었는데, 갑자기 문득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치이익- 소리'를 듣고 있지? 고기를 구우면 가장 먼저 반응해야 할 감각 기관은 당연히 후각, 냄새를 맡는 것 아닌가. 킁킁.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다시 킁킁. 아무리 숨을 들이마셔도 아무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이런 젠장. 코로나 바이러스의 후유증이 미각과 후각을 잃는 것이라더니, 이럴 수가.
아니나 다를까. 그 맛나던 소고기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흡사 고무를 씹는 듯하다.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짠맛'이 미미하게 느껴진다.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먹어보고 나서 깨달았다. 매우 짠맛, 단맛, 매운맛 등 가장 기본적이고 자극적인 맛만이 미미하게 느껴질 뿐이다. 하. 이건 뭔가. 아예 맛이 안나는 것도 아니고 이건 아주 '다른 맛'이 나는 거다. 그 음식이 가진 맛 중 일부의 맛. 그러니 같은 것을 먹어도 완전 다른 맛을 느끼는 것이다. 고기를 씹고 있는데 오롯이 짠맛만 느끼고, 라면을 먹는데 오로지 매운 느낌만 받으면 도대체 무엇을 먹고 있는 것인가?
식욕에는 문제가 없으니 자꾸만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하다가도 한 입 먹고 나면 그 모든 의욕이 싹, 사라진다. 입에 넣기 전에 그 음식에 대해 상상하는 맛, 이미 알고 있는 맛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맛을 느낄 때의 그 실망감. 맛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렇게 숟가락을 놓으면 눈치 없이 배는 또 고프고, 그래서 마지못해 입에 또 무언가를 넣어보지만 금세 또 실망하고 식욕을 잃는 그 프로세스를 반복할 뿐이다.
생에 처음 겪는 일에 대한 충격은 차치하고, 식욕은 곧 삶의 의지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식욕이 사라진 자리를 채울 다른 욕망조차 꿈꿀 수 없는 현실에서 식욕의 강제적 부재가 너무나 어이없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만족감이 내 일상에서 이렇게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줄이야. 사람에 따라 회복에 몇 달씩도 걸린다는 사실은 이 슬픔을 한껏 배가시킨다.
그와중에 굳이 장점을 찾아보자면 불쾌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 후각이 예민하다 보니 일상에서 쉽게 만나고 눈살 찌푸렸던 각종 불쾌한 냄새, 예를 들어 하수구 냄새, 음식물 냄새, 방귀 냄새로부터 해방되긴 했다. 그리고 미각은, 글쎄다. 식욕을 굳이 억제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이 저절로 억제가 된다는 점?
흑. 더 많은 장점을 찾으려 굳이 노력하고 싶지 않다. 있으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없어졌을 때야 그 존재감을 느끼는 어떤 것들. 앞으로는 오감이 온전하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고 살겠습니다. 그저 어서 돌아와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