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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Mar 02. 2022

나에게 갇히지 않은 시간

나의 속도로 걷고, 머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나의 생각을 말하고, 한 가지 주제로 대화를 한다. 이 일련의 일상이 너무나 그리웠던 나머지 그 일상을 되찾은 지금이 꿈만 같다. 일상의 희생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주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돌아올 수 없다면 비일상은 결국 나의 정신을, 그리고 모든 것을 흐트러트린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시간이 난다고 지금부터 시작,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는 거짓말처럼 1초 만에 빠져들 수 있는 그 상태. 예전에 김수우 시인은 그 상태를 '마음이 촉촉한' 상태라 했다. 그리고 지금이다.


길거리엔 새로 입학과 개학을 맞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처음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젊은 엄마들 손에 들린 꽃가지가 색색이 곱다. 아직 찬기운 가득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내리쬐는 볕은 분명, 겨울은 아니다. 겨울과는 색이 다른 이른 초봄의 볕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지금,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눈에 담기는' 순간. 지금이 바로 마음이 촉촉한 상태다.


삭막하고 황폐한 마음속에는 온통 '나 자신' 밖에 없다. 부족한 나 자신과 나의 상황, 거미줄 같이 엮인 모든 것의 중심에 오로지 나밖에 없다. 나에게 함몰된 세상에서 시간은 한없이 더디게 간다. 그렇지만 마음이 촉촉한 상황은 다르다. 모든 것이 나를 통과하고, 지나간다. 보이는 풍경과 사물, 사람. 모든 것과 나의 경계가 흐려져 한데 존재한다. 그 흐름 속에서야 비로소 나는, 숨을 쉰다. 편하게 숨을 쉰다. 감정의 어지러운 그물 없이, 시간과 공기가 흘러가는 무질서 속으로 숨을 내뱉고, 한껏 들이쉰다. 그리고 그 숨이 자연스럽다.


나에게 갇히지 않는 시간. 내가 세상의 일부로 존재할 수 있어서 편안하고 행복한 이 시간이, 눈이 시리게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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