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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Mar 12. 2022

사랑, 아름답다고 하지만 않는다면

희극 '시라노'의 핵심적인 내용 중 일부는 이것이다. 원래 크리스티앙이라는 여자를 너무도 사랑하는 남자, 시라노가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앙은 록산을 사랑하고, 시라노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크리스티앙의 사랑을 이루어주고자 한다. 그런데 정작 록산이 크리스티앙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시라노가 대필해 준 사랑의 시와 편지들을 매개로 한다. 그래서 묻는다. 록산이 사랑한 것은 무엇인가. 크리스티앙을 사랑한 것인가, 혹은 크리스티앙을 사랑하는 시라노의 마음에 그저 감화된 것인가.


사랑의 얄팍함을 본다. 사랑만큼 인간을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그 순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또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렇게나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사랑일진대, 정작 그 사랑이 향한 곳이 어딘지는 짐짓 혼란스럽다. 무엇에 대한 사랑이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느끼는 그 마음 자체가 가진 힘이 크다는 사실이 초래하는 허무와 절망의 크기는 어떠한가.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은 상대의 '어디'를 향해 있는가. 상대가 가진 모든 것 인가? 아니, 상대가 가진 무엇이기는 한 것인가. 가령 상대의 외모, 성격,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진 배경이 있다면 외모 중 어떤 것, 성격 중 어떤 것, 그리고 배경 중 어떤 것을 사랑하여 나머지는 그저 감당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 사람을 현재 사랑해야 하는 자신을 납득하는 것은 아닌가. 현재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여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사랑은 상대를 향한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따스한 손길, 관심이어서 그것을 주는 이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사랑은 상대를 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의 실체를 본다. 이기적인 인간이 가진 사랑의 실체는 사실 상대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가지고 싶은 욕망, 가질  있을  같은 희망은  가졌음의 만족과 가진 것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수순에서 사랑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가졌으되 원하는 만큼 가지지 못함, 가져보니 원하던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오는 절망과 좌절,  모든 과정을 포괄하여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질  있는 모든 일이 과연 아름답다   있는지는 그저 의문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사랑, 이 단순한 두 글자 속에 인류의 유구한 세월이 굽이치는 것이니, 사랑은 원래 그 자체로 인간의 생이고 인간이 가진 선악의 모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 아름답다고만 하지 않는다면 그저 '인류' 만큼이나 보편적인 어떤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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