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siseon Mar 13. 2022

예민함, 공감의 토대

예민함 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예민함은 민감도에서 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있어서 민감도. 물리적으로는 후각, 시각, 미각, 청각, 촉각에 따른 감각을 매우 디테일하게 느끼는 것. 그리고 물리적이지 않은 것에서는 주로 맥락을 읽는, 혹은 맥락이 읽히는 정도가 어느 정도로 민감한가에 따른다. 그래서 이 민감도는, 후천적인 것인가? 선천적인 것인가.


육아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의 주요 시청 나이대  하나가 20대라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20대가 육아를 하기 때문일까?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그럴  없다. 그렇다면 20대는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는 것일까. 소위 문제 행동, 과한 행동들을 하는 아이들의 행동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프로그램이 결혼도 육아도 하지 않는 20대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민감도에서 찾는다. 요즘 20대들은 삶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비 물리적인 측면에서의 민감도가 매우 높다.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그중 하나는 자신에게 천착할 시간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현재 20대들은 삶의 경로가 매우 다양하다. 소위 좋은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면 대기업이 두 팔 벌려 환영해주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그 시기는 어떻게 보면 (취업의) 기회가 많았던 시기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개성이나 생각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삶의 경로를 개척하기에는 오히려 기회가 적었던 시기다.


그런데 요즘 20, 30대는 다르다. 해외여행으로는 직접적으로,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는 간접적이지만 매우 실시간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또한 과거에 비해 물질적 풍요를 이룬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다양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자신에게 질문을 할 수 있어졌다. 이런 다양한 기회 중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혹은,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금쪽같은 내새끼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있는 가장 좋은 방법  하나는 그것을 해석해주는 이를 찾는 것일 테다. 개인이 가진 성향이 날것 그대로 가장 극대화되어 드러나는 시기인 유소아기의 아이들을 살펴보는 . 그리고 육아를 하는 부모로서가 아니라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들을 보면서 개인이 혼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관계를 해석할  있는 틀을 가지게 된다.


민감도에서 기인하는 예민함. 그것은 후천적인 것인가 선천적인 것인가. 무엇이라 확정할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자신에 대해 더욱 많이 고민할수록 그만큼 주변을 살필  있다는 점에서 민감도가 높아지는 것이 결코 부정적인  만은 아닐 테다. 그러나  민감도가 오히려 자신이 움직일  있는 폭을 좁게 하는 예민함이 되었을 , 그것은 자신에게 결코 좋을  없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학습된 것이든 타고난 것이든 적어도 자신을 파괴하는 힘이 되지만 않는다면 예민함, 그것은  많은 공감의 토대가 되어줄 선물인지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 아름답다고 하지만 않는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