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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Mar 22. 2022

현재의 시간을 산다

묵은 감정을 또 하나, 정리했다.


감정의 힘은 나에게 늘 너무나 버거울 만큼 힘이 세다. 그 모든 덩어리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글을 쓰는 것이지만,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상태까지 가는 것도 힘이 든다. 생각의 힘이 가진 자기 파괴적 본능, 그것이 가장 무섭다. 가장 극단을 선택해서 모든 것을 더 이상 무너질 수 없는 바닥까지 완전히 끌어내리고자 하는 의지. 모든 것을 파멸에 이르게 해서 멈추고 싶은 욕망. 내일이 없는 것 같은 멈춰진 시간의 늪에서 한 발을 떼고 올라오는 것은 매번 가능한 것이 신기할 만큼 어렵다.


그 늪을 딛고 올라오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위태위태한 상태로 어떻게 또 하루하루를 견뎌가는 것일까. 의지인가? 아니다. 나의 의지는 늘 그만큼 강력하지 않다. 오히려 작용과 반작용 같은 것이라고 하면 말이 될까. 바닥까지 끌어내리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면 포기할 만큼의 용기가 없어 길게도 이어져 온 일상, 그 일상의 힘이 있다. 일상에는 루틴이 존재하고 루틴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살게 한다. 그리고 바보 같은 뇌는 기계적 움직임과 정말 살아있음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어 그저 괜찮은 줄 착각한다. 그 착각이 바로 일상의 힘이자 늪을 빠져나오는 힘인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살아야 하고. 그래서 또 한 걸음 걷는다. 언제든 끝나버릴 삶이라면 하루쯤, 밀도 있게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을. 의미를 부여하고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헛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는 나로 살아가는 정도. 현재의 시간을 느낀다. 그 정도만큼으로 오늘 하루를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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