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이 쉬이 드는 편이 아니다. 어렵게 든 잠을 푹 자는 것조차 아니라는 것도 손목에 밴드를 차기 시작한 얼마 전에 처음 알았다. 그러니 잠을 개운하게 깨지도 못해서 늘 잠, 잠이 일상의 고민 중에 하나다. 우선은 새벽형보다는 올빼미형이 확실한 패턴이 문제라면 문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니 일찍은 자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어우러져 있다. 억지로 잠을 청하겠다며 캄캄한 방에 누우면 이내 그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형광등같이 환한 휴대폰 불빛을 얼굴에 비춰대기 일수다.
그나마의 휴대폰질 조차 지겨워지면 - 사실은 해본 사람은 알지만 누워서 휴대폰 보는 것만큼 이상한 자세가 없다. 곧 손가락이, 팔목이, 목 근육이 당겨온다 - 체념하는 마음으로 다시 어둠 속에서 눈동자를 굴려대는데, 사실 그때만큼 또 다양한 생각을 하는 때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번쩍이는 잡생각들을 하다가 늘 잠이 결국은 든다는 사실이 때로 신기한데, 더욱 신기한 사실은 그것을 아침이 되면 말끔하게 잊는다는 것이다. 생각의 어디쯤, 일상에서 유사한 생각이 걸리면 간신히 기억날까. 그래서 어제는 잠자리에 누워서 하는 생각을 메모장에 기록해보기로 했다.
- 매일 5분짜리 동영상을 올린다.
- 매일 5분짜리 동영상을 위한 각본을 짠다.
- 목표는, 5분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 무엇으로 5분을 만들 것인가.
- 그저 매일의 글쓰기처럼, 매일 만들어 본다는 데 의의를 둔다.
- 일단 주인공은 나. 내 얼굴이다 ㅋㅋ(?)
- 카메라 샤워를 위함이다 ㅋㅋ (?)
- 그래도 뭘 하지?
- 5분의 리뷰?
- 책? 밥?
- 나는 영상제작에 소질이 있나?
- 뭔 상관?
- 그림 그리는 거 5분
- 화장하는 거 5분
아연실색이다. 의식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는 저 어이없는 생각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오늘 메모장을 열어보고서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너무 어이가 없어서 정말 그대로 옮겨 쓴 글이다). 어젯밤에, 글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거울을 봐야겠다고. 화장도 하고 나를 가꾸겠다고. 그런 생각을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을 뿐인데 글까지 쓰고 났더니 그 생각이 계속 이어진 모양이다. 평생 남이 찍어놓은 유튜브는 5분도 못 보고 있는 주제에 내가 무려 5분짜리 영상을 찍어 어딘가에 올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심지어 흥미가 돋았다. 그러나.. 사실 오늘 나는 메모를 다시 보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저 글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니 메모를 할 당시에는 꽤나 흥분했던 거 같다. 그래서 검색도 좀 하고, 브이로그라는 말도 처음 찾아보고.
그러니까 놀라운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저 생각을 메모하던 새벽 2시에 나는 검색을 해볼만큼 그렇게나 성실하게 들떠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일어나서는 그 모든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는 것이다. 이건 뭐지. 두 개의 자아가 한 몸에 살고 있나.
그래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앞으로는 종종 자기 전의 생각을 메모하기로 한다. 오늘 보니 자기 전의 나는 일상의 나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자존감이 높으며(?) 추진력이 강한 것 같다. 배울 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 정말로 영상을 아무거나 5분씩 찍어본다. 이 모든 영상 어쩌고의 생각들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미루어 짐작해보니, 나는 내 일에 꽤나 지쳐있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나의 천직인 줄 알았고 야망을 품었던 일이 내 손바닥에서 모래알처럼 흘러나가고 있을 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며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 '일상의 나'와 가장 먼 곳에 있는 일을 한번 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듯하다. 그리고 요즘, 매일 글쓰기의 위력을 점점 느껴가고 있는 바, 우선은 그저 '매일 찍기'에 방점을 둔다. 무엇을 찍을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는 한 30일쯤 찍어보고 나서 생각해보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