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거울을 봤다. 사회생활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이다. 거울을 보지 않는다. 나는 이제까지 줄곧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 꾸민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시선은 거들뿐, 내가 '어떤 기분이냐'에 따라서 나를 꾸민다고 확신했다. 그 확신이 와장창 무너진 것은 '거울을 보지 않는 일상'을 마주하고부터다. 나의 꾸밈과 외모가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 때, 나는 꾸미기는커녕 심지어 거울 조차 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은 한편 내 외모에 대한 꽤 높은 자존감의 작용이기도 했다. 빼어나게 꾸미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적당한 쌩얼로 살아가도 크게 불편이 없었다. 그런데 거울을 일상적으로 보지 않던 어느 날, 갑자기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낯설어졌다.
내가 얼굴이 이렇게 각진 스타일이었나? 눈동자는 작고? 눈썹이 이렇게나 처졌어? 이건 약간 비정상인거 같은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낯선 내 얼굴을 향한 질문을 퍼부었다. 그 어색함을 견딜 수 없었는지 갑자기 잠시 20대의 습관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혼자 방송하듯이 거울을 보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 방에는 붙박이장에 붙은 전신 거울이 있었고 나는 그 거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통화 - 주로 연애질..- 하는 것을 좋아했다. 통화를 할 때 나의 표정은 매우 다양하고, 그래서 민망하게 재밌었다. 아,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때 이런 표정이구나. 나는 말할 때 이런 표정을 짓는 버릇이 있구나. 상대와 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나를 관찰하는 것. 두 가지를 함께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 이후 취준생이 되어 면접 준비하던 때를 제외하곤 다시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 갑자기, 그 버릇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매우 생경한 내 얼굴을 마주했다.
시작은 물론 어색했다. 갑자기 낯선 상황에 대응하느라 긴장한 듯이 얼굴 근육이 마음대로 노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다양한 감정을 떠올리면서 표정을 지어보다가 깨달았다. 하나는 표정이 훨씬 단조로워졌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정말로 얼굴이 변했다는 것. 후자는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몇 년 전과 비교해도 5킬로 이상 줄어든 내 몸무게를 생각하면 얼굴형 자체가 변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특히 최근 들어 좀 더 빠진 점을 감안하면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새로 마주한 나의 각진 얼굴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생기는 각종 낯선 주름들과 어우러져 정말로 생경해 보였다. 얼굴을 누가 구겨서 잡아당기는 느낌이랄까. 이럴 수가. 거기에 단조로워진 표정까지. 이 모든것은 그렇게 내 안의 어떤 새로운 투지를 일깨웠다.
'그래, 카메라 샤워라는 말이 왜 있겠니.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 지를 깨닫는 거야. 일단 눈썹 정리라도 하자. 그리고 화장, 쉐딩? 도 좀 배우고. 팩도 다시 시작해야겠군. 이보다는 더 나을 수 있잖아?'
오만방자한 나의 외모 자부심이 상처를 입은 오늘, 이제야 진정으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를 위해 나를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거울을 하나 사야겠다. 평생 손거울 하나 사본 적 없지만, 거울을 자주 보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지. 30대 중반, 불현듯 나는 꾸며서 더 아름다운 내가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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