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짜리도 글을 통한 연대와 유대를 느낀다

소설을 왜 읽냐고 물으신다면

by 시선siseon

얼마 전, 지역 커뮤니티에 이런 질문글이 올라왔다. "아이에게 왜 책을 읽어줘야 하죠?" 글쓴이는 자기도, 신랑도 어렸을 때부터 공부와는 담쌓고 살았고, 그래도 잘 살고 있으며 그래서 아이에게도 공부로 인한 성공 이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데 그래도 주변에서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라고 하니까 많이 읽어는 주고 있다고. 그런데 대체 책은 왜 많이 읽어줘야 하냐고 묻고 있었다. 아기가 아직 어려 읽어주는 책도 글자가 몇 없는 동화책 수준인데 그런 책들을 아기한테 읽어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익명을 빌어 묻는 솔직한 질문이었다.


역시나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이해력과 창의력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요즘엔 애들 수능 지문도 이해 못해서 문제를 못 푼다는 등 구구절절 들어왔던 독서에 대한 찬양이 나열되고 있었다. 아 예예, 뭐 그렇습죠.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눈에 딱 꽂힌 글이 있었다. 그래. 이거지. 책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읽는 것이라 했다. 사람이라는 것은 제각각이고, 너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반응하는지를 직접 겪지 않고도 다양하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혹은 너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공감을 배우는 것. 그것이 자기가 생각하는 독서의 필요가 아닐까 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 그렇게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내가 소설, 그중에서도 해외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는 아직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머릿속에 선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가 1984년에 발표한 그 소설에, 내가 있었다. 그때의 내 심정이 있었다. 차마 설명하지 못한 채 뭉텅 그려져 있던 나의 감정들, 누구에게도 쉬이 꺼내놓을 수 없었던 뒤틀리고 이해되지 못한 마음들이 거기, 너무나 온전히, 완벽한 표현들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읽던 책을 덮고 한참이나 울컥 대는 감정 - 놀람, 감동, 전율 등등 - 을 멍하니 느꼈던 것 같다. 그만한 위로가 어디 있을까. 지금 내가 겪는 이 감정과 고통이 나에게만, 나의 인격적 결함이나 부족으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니라고. 지구 반 바퀴는 떨어진 곳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사람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그래서 그 순간, 그 작가가 나에게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듯했다.


내가 느낀 위로는 유대감, 연대였다. 누구 하나 같은 사람이 없는 인간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인종도, 국가도, 시대도 초월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글을 통한 연대이고 유대이며 나는 '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글을 써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그들의 그런 노력이 없이는 글을 통한 유대라는 것이 형성되지 못할 테니.


다문 책만 그럴까. 사실은 드라마도, 영화도, 사진도, 그림도 '어떤 시선', 혹은 '어떤 이해'에 대한 표현이며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공유되어 하나의 감정적 연대를 만들어 낸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혼자라고 느껴질 때, 책을, 그리고 각종 작품들을 허기진 듯 게걸스레 찾아 먹는다. 가장 힘이 없을 때는 짧은 드라마, 그리곤 영화. 시 일 때도, 책일 때도 있다. 그 모든 것은, 종종 위로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얻는 위로 보다 더욱 마음 깊이, 낯선 이의 위로가 고플 때가 있다. 그럴 때 기꺼이 자신의 시선과 생각, 이해를 드러내고 표현해 준 '그들'이 있어 위로받음에 감사한다.


끝으로 오늘 내 아들과의 대화.


"아가야~ 이제 잘 시간이야. 오늘도 신나게 놀았으니까 코~ 자야 내일도 신나게 놀 수 있겠지?"

"그럼 책 하나만 더 읽고 들어가서 잘래요."

"그래, 알았어. 무슨책 읽을꺼야?"

"'추피는 잠자기가 싫어요' 책이요!"

"그.. 그래.."


세 살 짜리도 글을 통한 연대와 유대를 느낀다.


(1,98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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