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기린 그림

내가 규정한 나에는 내가 없다

by 시선siseon

'엄마, 아기 상어 그려줘. 엄청 큰 아빠 상어랑 엄마 상어도!'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가 기억하는 한 미술학원을 3년 정도는 다녔던 것 같다. 그때 배운건 주로 뭐랄까. '패턴'에 가까웠다. 나무를 그릴 때는 여러 가지 초록색을 쓰는 거야, 연한 초록, 진한 초록, 청록과 연두. 사과를 그릴 때는 다양한 빨강을 쓰는데, 노랑도 쓸 수 있어. 이것 봐. 사과에 대한 표현이 더 다양해졌지?


그런데 제법, 그 패턴 교육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때가 되면 반복되던 사생대회에서 아주 좋은 상은 아니어도 몇몇 상을 받은 기억이 있고, 미술학원을 같이 다니던 두 명의 친구가 미술로 예중 진학을 결정할 때 즈음, 원장님이 내 엄마를 불러 나의 예중 진학을 권하셨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의 반응은 한마디로, '뭔 소리야?'였다. 나는 그림을 배우고 그리면서 딱히 '즐거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미술학원이든, 사생대회든 그림 그리기는 매번 무언가 과제를 완성해야만이 끝이 나는 숙제를 하는 시간 정도의 의미였달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무언가 내 뜻대로 그리려고 하면 그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배운 패턴대로, 시키는 대로 하고 나면 그럭저럭 한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고 남들 - 선생님, 부모님, 친구 등등 - 도 그 그럭저럭 함을 좋아했다. 그러니 내 그림에 자신감, 혹은 자부심이 있을 리 없었건만 그런 나에게 미술로 진학을 하라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그 자체였기에 가타부타할 것 없이 말도 안 된다고 했고, 혹여나 얘가 예중이라도 간다 하면 어떡할까 근심스러워 보이던 부모님도 내 대답을 다행으로 여기신 듯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 그래서 나에게 그림은 '보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림을 볼 때는 우선 제목과 설명을 꼼꼼히 본다.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싶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그린 그림인지, 작가가 의도를 표현한 방식이 어떤지를 발견하면서 그림을 보면 어떤 그림이든 처음 그저 그림과 눈 마주쳤을 때와는 달리 보인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 그것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마음, 작업 현장이 내마음에 떠오를 때 생기는 착시에 가깝겠지만 -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의 감동이 참 좋다. 그래서 그림은 보는것이 매우 만족스럽게 좋은 취미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언젠가부터 다시 미션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가지게 된 시점부터 아이는 무언가를 그려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고작 동그라미와 직선 정도 그리게 되었으면서 '우리 그림 그리기 하자'라는 문장을 쉬이 내뱉는 아가는 나에게 자꾸만 미션을 줬다. 처음엔 그저 당황스러웠다. 사..상어를 어떻게 그리더라..


어려울 땐 우선 베끼기다. 어딘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간단히 베껴 그리기 시작했다. 어라. 그래도 제법 그럴싸하게 베껴진다. 그리하여 아이의 훈육(?)에 발맞추어 스케치북을 하나하나 내 베끼기 그림으로 채워가던 어느 날.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이 뭔가 즐거웠다. 내가 즐거워하고 있구나가 느껴져서 혼자 흠칫, 놀랐다. 신이 난다, 이런 것이 아니고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몰입하는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이는 어차피 내 그림에 관심이 없다. 무언가 그려달라고 해놓고 다른 짓을 하기 일수인데 내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이것저것 그리면서 씨익, 웃음이 났다. 별 것 아닌 기찻길, 소방차, 햄버거 등등을 그렸을 뿐인데 우리 때는 없었던(!) 크레파스의 선명한 색깔도, 그 질감도 자꾸자꾸 무언가를 그리고 싶게 했다. 내 손을 거쳐 형태를 갖추는 스케치북 위의 물체는 예전과 다르게 대단히 똑같지 않아도 마음에 들었다. 정확하게는, 나만의 베끼는 스타일이랄까, 그런것이 생기면서 그 스타일들을 이어가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정말 생뚱맞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 알고 보면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 질문은, 그 질문을 스스로 하고 느꼈던 당황스러움은 그림 그리기를 넘어서 내가 정의했던 나 자신에 대한 질문과 의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한 것들. 특히나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의 경험에 기반한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5년 전,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인데, 과거의 나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


스스로를 정의하고 규정한다는 것은, 그리고 한 번 형성된 정의를 그저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서 또다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매우 낯선 기분이 든다면 그 일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조용한 의지가 생겼다. 이제야, 라는 실소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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