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볕이 창가에 한가득 들어선다. 아직은 차갑기만 한 바람도, 새순이 돋을 듯 아직 돋지 않아 앙상한 나뭇가지 무심하게 마치 봄이 한창이라는 듯이 햇살이 쏟아진다. 그래 그래, 알았어. 봄이구나. 봄이 오고 있구나. 마지못해,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맞장구라도 쳐줘야 할 듯이, 그렇게 봄 볕이 창가에 한가득 들어섰다.
쉽지 않은 주말이었다. 아이와의 감정 노동이 점점 심해지는 시간. 아이가 자기의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모두 드러내고, 그 불덩이 같은 감정에 휩싸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때, 나 또한 그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에 너무도 쉽게 영향을 받는 나는 결국 아이 앞에서도 의연해질 수 없었다. 이런 순간에 보통 사용하는 나의 문제해결 방식도 이 문제에서 만큼은 무력했다. 내가 살아가며 겪어온 힘든 순간, 감정에 짓눌려 몸부림치는 고통을 그대로 겪는 내 아이. 내가 지금 이 아이라면,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나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나 역시 아직도 내가 감정에 휩싸인 순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아니 어떤 도움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견뎌내고, 애쓰긴 하지만 늘 감정의 파도는 나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느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모든 거센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결국 아이에게도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나는 그저 기다려줬어야 하는 걸까. 그 순간이 찰나가 아닌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다 해도 나 만큼은 명백한 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굳건히 버텨줬어야 하는 것이었나. 아이에게 이 감정에는 끝이 있다고. 너무 좋은 감정도 아무리 붙잡고 싶다 한들 지나가고야 말듯이 지금 너에게 온 이 짜증과 슬픔도 결국은 지나갈 테니, 조금만 심호흡하고 기다리자고. 나는 옆에서 같이 휩싸여 불행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연히 기다려줬어야 하는구나.
글 쓰고 싶을 때. 그리고 글이 써질 때, 나는 가장 평안한 나를 마주한다.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 나의 목소리에 내가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시간이 가장 포근하다. 그래서 이렇게, 도무지 아연하게만 느껴졌던 어제의 절망에 오늘의 내가 답한다. 여전히 창가에 쏟아지고 있는 따스한 봄 햇살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