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시간에 행복하고 싶었다. 혼자라는 것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이지 않은가. 누구와 함께여야, 혹은 무엇을 해야,라고 변수가 하나 둘 끼어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한 조건이 자꾸 늘어나는 것이니까, 그저 내가 구성할 수 있는 소소한 조건 하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 그런 행복을 가지고 싶었다.
2.
요즘, 제법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마치 잘생기고 예쁜 아가한테 오히려 못생겼다고 해야 복이 들어온다는 옛 어르신들 말 마냥, 행복하다고 해버리면 마치 어딘가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혹은 불행의 신이라도 노여워해서 금방이라도 불행을 잔뜩 가져다줄 것만 같이 불안하다. 그러고 보면 장기하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라는 가사는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해학적이고 그래서 멋있었다. 별일 없이 산다고 했지만 그 별일 없이 사는 것은 '별다른 걱정'도 없고 '이렇다 할 고민'도 없이 '하루하루가 즐거웁'고 '매일매일이 신'나며 심지어 그래서 '사는 게 재밌'다고 했다.
별일 없이 산다 - 장기하와 얼굴들, 2009년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아주 그냥
왜, 나는 별일 없이 산다고, 사는 게 재밌다는 이야기가 십중팔구 남이 들으면 불쾌하고 심지어 두 다리 쭉 뻗고 잠들 수 없는 이야기 인가. 별일 없이, 사는 게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이거, 정상인가?
3.
나는 강박이 있었다. 아니, 아직도 있다. '영향력'에 대한 강박. 무언가 세상에 영향력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 처음엔 그저 하고 싶다 인 줄 알았는데 막상 그런 일들을 잠시 멈추고 나니 알 수 있었다. 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가 사실은 그렇게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니,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무의식 중에 계속 교육받아왔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뭘 꼭 안 해도 저는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가 될 수는 없었다.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고, 그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서 결국 그런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인생의 목표로 공유했다. 물론 커서 뭐가 될지에 대한 대답이 허용하는 범위에는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 잘 키울래요'도 없었다.
4.
그런데 지금, 무엇이 되기 위한 노력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려놓은 지금, 나는 행복하다. 전처럼 목표를 향해 하루를 견디고 버티는 삶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채워가는 삶, 주어진 것을 즐기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 전에 없이 행복하다. 그런데 자꾸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이렇게 적당히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무엇인가 영향력 있는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일신의 행복에 만족하는 이런 삶을 살아도 되는 것일까. 문득문득 불안하다. 그래서 감히,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 살면서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해본 것이.. 이제야 처음인 주제에.
5.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밥도 먹지 말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이제야 생각건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인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내 엄마가 나를 낳을 때 꼭 무엇인가에 써먹으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듯이, 인간은 그저 태어나고, 다양한 형태로 살아도 그 존재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이제야 조금씩 생각을 바꿔본다. 내 인생의 존재의 의미. 참 어려운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