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생에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인턴사원 장그래 출근 첫날, 상사가 장그래에게 문서가 잔뜩 들어있는 하드디스크를 넘겨주면서 자신이 만들어 둔 폴더 트리에 문서를 옮겨서 정리하라는 업무를 지시한다. 문서들이 낯익을 리 없는 신입이 파일을 정리하다 보니 분류가 안 되는 파일들이 나타나고, 장그래는 그래서 자신이 새롭게 폴더 트리를 짜서 - 나름 체계적으로 - 문서들을 분류한다. 그 결과는?
“내가 정해서 준 폴더 구성은 이 회사 매뉴얼이야. 모두가 같은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고. 당신이 이렇게 고치면 문제 있을 때 당신에게 문의해야 하나? 혼자 하는 일 아닙니다. 함께하는 일이라고. 명심해요”
나는 저 장면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물론 저 스토리의 맥락에서는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상사가 이야기했듯, 대기업의 매뉴얼은 모두의 이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의 효율성의 측면에서 봐도, 신입이 멋대로 분류한 문서들은 갈 곳을 잃는다.
그런데.. 장그래가 만든 폴더 트리가 사실은 훨씬 더 유용한 분류 방식이었다면? 늘 해왔던 방식이라고 반드시 가장 좋은 방식은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누군가가 기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 그리고 더 좋은 대안을 내놓은다면?
그런 대안이 받아들여지는 조직이 있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조직은 흔치 않다. 행여 누군가 기존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 보통 제기하는 이의 '호기로움' 혹은 심지어 '건방짐' 정도로 치부되고 만다. 그러니까, 결과가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의 문화를 잘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 그래서 심지어 그 문화뿐 아니라 그것을 해오고 전달하는 상사들에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존경'하여 잘 '모시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조직에서는 때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나는 불편한 것을 잘 못 참는다.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지는 일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납득이 된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나의 모자람을 탓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방식의 일을 할 때 느끼는 개인적인 부침이 크다. 한때는 나도 스스로를 답답해했다. 그냥 뭐든 그러려니 하면 안 되냐고. 어떤 방식이든 생각이 다르려니, 그러려니 하면 다 쉬운 일인데 왜 그렇게나 불편해하느냐고. 그러나 그러려니를 마음먹는 것도 매번 작심삼일,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러려니 하겠다는 다짐은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디는 것일 뿐,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조금도 나아지는 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서 무조건 조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수용하기보다는 짓누르고 억압하는 관료적인 조직의 문화와 그것을 따르는 조직원들. 그 모든 것을 혐오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미천한 경험치에서 오는 호기로운 생각들을 조직이 일일이 다 받아주고 대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이해한다. 딱 한번, 그런 상사를 만난 적이 있다. 일을 시키되 그 방식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상사. 도움을 구하면 기꺼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천한 경험에서 오는 다양한 문제제기들에도 언제나 열려있으셨던 분. 어떤 것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같이 공감해주기도 하고 더 넓은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게 공감을 전제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또 알려주셨다. 그때는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잘 몰랐다고 하면, 지금 생각하기에 그 한 분이라도 만난 것이 나의 짧은 직장생활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 밑에서라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뼈를 갈아 함께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그런 상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심지어는 미천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하나는 알되 둘은 모르면서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무지를 당당히 내비치는 불만투성이의 팀원에게 나는 어떤 상사가 될 것인가. 그 직원 하나 납득시키자고 매번 설명하고 토론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을 따를 것인가, 일단 급하니까 내 방식대로 우선 하라고 그 직원의 부침을 못 본 체할 것인가. 물론 직원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내가 만났던 상사만큼을 일관성 있게 할 자신은 없다. 아하하하. 그 말인즉슨, 나 또한 조직에 계속 있었더라면 내가 가장 혐오하던 상사들 중 하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일을 하는 나의 태도를 생각해 본다. 열 살도 넘게 어린아이들과 일을 할 때 나의 태도는 어떠했나. 나 자신의 불편은 못 견디면서 타인의 불편 또한 그저 나에게 제기된 불편 정도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내가 그렇게 혐오하던 상사의 모습을 내가 보였던 것은 아닌지, 곰곰이 곱씹어 본다. 역지사지. 그렇게 쉽고도 흔한 말인데, 방심하는 순간 오직 '나'와 '내 생각', '내 입장'만이 중요한 꼰대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구나. 나의 불편을 생각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 오늘도 기본을 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