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글쓰기, 말하기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 말, 특히 스피치를 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일이다. 역순으로 말하자면, 잘 짜인 양질의 스피치를 하기 위해서는 ‘대본’이 필요하고, 대본이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사유와 생각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충분히 사유하는 것이며 기본에 충실할 때 말이든 글이든,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그랬지. 생각이 없는 말이나 글은 청중을 혹사시킬 뿐이라고.
그러나 '생각'이 들어간 글이 어디 쉬운가.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도 했다. 글은 크게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첫 번째는 생각 없이 쓴 글이다. 특정 목적을 두지 않고 그저 써 내려간 글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을 하면서 쓴 글. 그러니까 글 쓰기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한 글이다. 마지막이 생각을 마친 후 쓴 글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어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히 드러났을 때, 이를 옮긴 글이다. 이 세 유형 중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청중의 귀를 혹사시키는 글, 그리고 마지막 글이 '양질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글이 되시겠다.
내가 평소에 글을 쓰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주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물론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겠다는 약속에 볼모로 잡혀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주로 글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세 번째 유형의 글쓰기를 시도한 바 있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키워드 중심으로 개요를 짜고, 그 골격을 밑그림 삼아 살을 붙여나가면서 글을 쓰는 과정 말이다. 뻔히 개요가 짜져 있는데도 글을 쓰다 보면 자꾸 생각이 여기저기로 튀고 그 모든 것을 반영하고 나면 결국 글은 처음의 구조, 의도와는 다른 글이 되어있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처음의 의도라는 것이 보통 뭉퉁그려진 생각에 불과해서 새롭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쓴 글 자체를 부정하기도 애매하여 그저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글의 골격을 짜 봤자 어차피 그렇게 써지진 않더라며 글 쓰기에 앞서 구조를 잡는 일 조차를 놓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 결국 글을 쓰기 전에 구조를 잡는 단계에서 이미 충분한 사유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 번째 유형의 글쓰기가 늘 어려웠다. 모호한 생각들을 몇 개의 키워드로 정리해 봤자 막상 글을 쓰다 보면 느슨한 연결관계에 있던 키워드들이 결국 따로 놀게 되면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억지스러운 사설이 들어가기도, 아예 글의 방향이 바뀌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 결국, 생각이 있는 글쓰기란, 글을 쓰기 전에 글의 주제에 관해 얼마나 깊은 사고가 있었는가에 좌우되는 것이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어쩌다 한 번쯤은, 잘 짜인 ‘계획된’ 글을 쓰고 싶다. 어제는, 그리고 오늘은 그저 일기에 불과한 에세이를 쓰더라도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기획된 주제로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 하핫. 그래도 이제 제법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 몸에 익어가나 보다. 그러니 이렇게 다른 생각도 하고. 이렇게 또다시 글쓰기로 다른 한 걸음을 내딛는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