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을 쓰는 지인에게

공감의 헌정사

by 시선siseon

너랑 이야기를 하고 나면 때때로 모호한 지점이 있었어. 가늠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해야 하나. 늘 꽤나 완전에 가까운 공감을 바라는 나에게 - 그리고 그걸 늘 보통 해내어 주는 너에게 - 나 또한 그런 공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려웠어. 너의 언어는 나의 언어와 다르고, 때로 이해하기엔 충분치 않은 이야기의 조각들을 맞춰 보곤 했지만 전체를 보기는 힘들었달까. 솔직히 말하면 그게 좀 답답할 때도 있었어. 너를 만나면 늘 너무 많이 나를 설명하는 나 때문에 나에 대해서라면 온전히 알 것 같은 너를, 나는 10분의 1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너의 세계를 궁금해하기도 하고, 어쩔 땐 이 공유의 비대칭에 조금 부채의식을 느끼기도 해서 말이야. 네가 요구하지도 않은 공감인데 나는 그걸 온전히 줄 수 없어서, 늘 조금의 마음의 빚을 느꼈달까. 그래도 그나마의 너를 표현하고 꺼내어 주는 것이 너에겐 늘 흔치 않은 일이라, 나는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했어. 사실 꽤 익숙해지기도 했고 말이야.





그래서 너의 글을 읽으면 좋았어. 네가 글로 정리해 주는 너의 생각들이라니. 나에겐 갑자기 너무 많은 클루가 주어진 느낌 이잖아? 나에게 일견 흐릿했던 너의 세계는 역시 나만큼이나 총천연색이고, 또 기민하고, 깊어서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어. 그리고 오늘이다. 너는 글쓰기를 통해 제대로 마주한 적 없던 자신을 해체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고, 무엇을 피하고자 했을까를 고민했어. 네가 느끼는 우울과 고통을 나는 역시나 그 자리에서 다 이해한 게 아니었다는 걸 너의 글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나 네가 그려낸 그 고통을 내가 왜 몰랐을까, 한편 크게 놀라기도 했어. 자신에 대해 굳이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네가 너의 외면할 수 없는 성실에 붙잡혀 매일 스스로를 묘사해내는 노동을 하고 있다니. 농담처럼 돈 받고 매일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괴롭겠냐고 말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성실에 볼모로 잡힌 글쓰기란 점에서 너에겐 다를 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야, 네가 힘겹게 드러내고 있는 너의 세계는, 공고히 아름다워. 예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색깔이 있고 울림이 있어. 그래서 너의 고통 위에 탄생한 그 산물들이 나에겐, 그리고 누군가들에겐 반갑다고 하면 너무 잔인할까. 그래서 이 짧은 여정이 너에게 너무 고통스럽지만은 않기를, 끊임없이 자아를 갱신해가는 우리에게 이 여정이 조금 더 단단한 자아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도 될까.





그래도 힘들면 말해. 날 잡고 하루는 아무 글도 못쓰게 해 줄 테니까. 어떻게.. 위스키라도 한병 까야하나? 깨고 나면 또 성실병에 시달릴지언정 하루는 째자. 그리고 안 해본 일을 새롭게 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높이 사서 좀 대견해하기도 하고, 찰나의 사서 하는, 기대치 못한 고통을 만끽하자. 그래도 그러기엔 하나보단 둘이 낫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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