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뱉고 나면 정말 장점이 된다.
장점.
명사. 어떤 대상에게 있어서 긍정적이거나 좋은 점.
장점을 적으려다 무려 장점의 사전적 단어 뜻까지 찾아볼 일인가. 그러나 어린 시절, 혹은 어떤 대상물에게도 그리 쉬이 붙여대던 말이면서 그 대상물을 나로 하고는 도저히 무어라 이야기할 수 없었던 탓이다. 왜 일까. 그저 긍정적인 점 정도로 생각하면 무언가 나올 법도 하건만 나의 장점이라 칭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은 떠오르자마자 내 안에서 '그건 아니잖아!'하고 반박하는 말이 득달같이 치고 올라온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뻑의 랩소디를 시작.
1. 외모
한참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가 있었다. 이나영과 이종석이 나오던 그 드라마를 보던 중,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이종석의 저 1억짜리 차랑 이나영 얼굴 중에 선택하라면 뭐 할래?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1억짜리 차. 그렇다. 나는 무려 이나영의 얼굴을 버렸다. 언니는 문자 그대로 아연실색하며 나를 쳐다봤고, 난 끝까지 뻔뻔했다. 이건 이나영의 얼굴이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 아닌 점도, 1억짜리 그 차가 내 취향이어서도 그런 건데 그런 변명 따위가 무색하게 그 선택은 두고두고 언니의 입을 통해 타인에게 에피소드로 전해졌다.
그러나 나는 당당하다. 나는 내 외모에 만족한다. 168cm의 키, 56kg쯤 되는 몸무게. 머리는 작은 편. 목은 긴 편. 어깨가 좀 있긴 하지만 대신 허리 라인이 들어가고 골반이 나온 몸매. 비교적 긴 다리. 희고 깨끗한 피부. 주근깨. 눈이 크거나 선명하진 않지만 속쌍꺼풀에 웃으면 하회탈이 되는 눈매. 길진 않지만 낮지 않은 코. 혈색이 도는 빨간 입술. 눈썹이 처져서 어렸을 적 별명은 스누피였지만, 워낙 잘 붓는 얼굴이라 눈이 맨날 팅팅 붓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외모가 좋다. 다시 태어나도 이 정도 외모면 나는 만족할 거다.
2. 진심
진심. 이것은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일을 할 때 정말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한다. 이건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태도와는 명백히 다르다. 사실 내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 일이 정말 된다고 나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일은 보통 실행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혹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고 나는 주로 그럴 경우에 진심을 다한다. 글 한 줄, 단어 하나에 마음을 쓰는 것은 이 일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타인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는 진심이고, 이런 마음으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을 능동적으로 하게 된다. 물론 그래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사명감을 주는 일, 그리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뼈를 갈아 넣어 일을 한다.
3. 공감
세상을,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 중 하나는 '공감'이다. 얼마 전, 미국 작가 토마스 울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지니어스'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살아있는 글'은 '사람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고. 소설, 영화, 그림, 사진, 음악이 나에게 짜릿한 감동을 줄 때 그 이유는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전하고자 했던 마음에 내가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있었을 때였다. 사람의 이야기.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다양한 생각. 그것을 표현해내고 싶은 인간의 욕구. 그 욕구에 공감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그러나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다양한 작품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게 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이 반복될 때야 비로소 미약하게나마 '그들의 의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아온 공감 근육이 나에게 인생의 축복이자 나의 장점일 거라 감히 생각해본다.
어쩌면 말장난에 불과할지 모르는 이 장점들은 내가 쓸 수 있는 나의 단점들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 하기에 오늘의 자아도취는 이것으로 충분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