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쁨만으로 내가 행복할 순 없었다

나를 채우는 시간이 없는 육아는 지옥이다.

by 시선siseon

아이와 함께한 하루의 고난함(애기 어머니, 옷은 그냥.. 인터넷에서 사는거예요https://brunch.co.kr/@siseon/47)을 글로 쓰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다. 왜 그렇게 고난했을까. 글로 쓰기에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 황급히 마무리한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었다. 단순히 체력이 부족해서, 몸이 고단해서라고 이야기하기엔 그 끝 모를 지침, 우울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우울했다. 아이와 부대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늘 나는 우울했다. 아기가 예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아이가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고,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한없이 우울했다. 그래서 밥조차 못 먹을 만큼 지쳤으면서도 나는 아이를 재운 이불을 박차고 나와 부득불 노트북을 열었더랬다. 이 우울과 절망과 무력함을 끌어안고 자느니 죽어도 뭐라도 하고 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시간이 필요했다. 끝 모를 희생을 요구하는 '엄마'로서의 시간이 아닌 '나'로 존재하는 시간. 그리고 나는 그 시간에서 '기쁨'을 찾는다.




그렇다. 나의 '기쁨'은 나의 시간에서 온다. 나는 언제 기뻐하는가. 기쁨. 그 순간이 온전히 채워져 뭐 하나 더하거나 빼고 싶지 않은 느낌, 더할 나위 없는 만족스러움, 그런 느낌이 나에게 기쁨이라면 나는 오감을 채워 주는 차와 커피를 마실 때 기쁘다. 재밌는 책을 발견하고 읽으면서 뇌가 저릿저릿 자극될 때 기뻐하고,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기뻐한다. 좋은 음악을 좋은 음향시설로 들으면 기뻐하고, 여운이 남는 영화를 보고 나면 기뻐한다. 술 한잔, 와인 한잔이 만족스러울 때 기뻐하고, 간이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맛난 음식을 먹으면 기뻐한다.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순간을 기뻐하며 연애하면, 설레는 데이트를 하면 기뻐한다. 그리고 낯선 장소와 장면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거나 자연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기뻐한다. 일의 영역에서도 나는 나의 일에 의미가 부여될 때 기뻐하고, 사유의 결과가 들어간 결과물을 생성하고 나면 기뻐하고, 일에 집중했을 때 기뻐한다.




나도 안다. 인생이 기쁨으로만 가득 찰 수는 없다는 것. 기쁨과, 그럭저럭 괜찮음, 보통, 좋지 않음, 나쁨이 번갈아 빼곡히 채워지는 것이 일상이고, 또 인생이라는 것. 그러나 나의 나쁨과 좋지 않음, 보통을 버텨내는 힘은 기쁨에서 온다. 소소한, 혹은 커다란 기쁨으로 충전된 영혼이 다시 일상의 스펙트럼에서 탈탈 털리고 나면 반드시, 기쁨의 충전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머지를 버텨낼 힘이 필요하다.




독박 육아 시간은 그래서 힘든 것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는 잠시의 '기쁨'도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나의 시간에서 오는 명백한 기쁨 외에 만족스러운 시간도 없진 않다. 그러나 '명명백백하게' 채워지는 순간 없이 끝없이 소진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그 일상을 버틸 힘을 잃는다. 그 결과는.. 우울이다.




그래서 나는 육아를 하는 엄마로서 종종 한계를 느낀다. 아니 사실은 이기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한계를 느낀다. 나의 명백한 기쁨은 나의 시간으로부터 오고, 타인의 기쁨에서 오지 않는다. 옛말에 부모는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고, 흐뭇하고, 행복하다 그랬다. 그런데 나는 아이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다행스럽다'. 나는 아이가 타인 손에서 행복한 순간을 옆에서 지켜볼 때 가장 '좋다'(심지어 기쁘다도 아니다). 물론 아이가 나에게 주는 무조건 적인 사랑을 느낄 때는 '기쁘'다. 그런데 그건 받는 것이니까..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나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인데 '나'의 기쁨은 '나'를 희생하고는 오지 않는다. 그게 심지어 내 배 아파 낳은 내 아이를 위한 것이라 할 지라도. 어쩌면 나는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 있을까. 세상에 이보다 더 이기적일 수가 있는 걸까.




나의 희생을 통한 타인의 기쁨. 타인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는가. 아니, 없다. 그 기쁨이 심지어 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한, 그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될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울었다. 나는 내 엄마의 오롯한 희생을 먹고 자랐으면서 나는 그럴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인 주제에 아이를 낳은 내가 너무 죄스러워서. 나는 심지어 내 엄마가 나의 존재만으로도 기뻐해 주길 바랬으면서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서. 죄 없이 태어난 소중한 존재, 세상 어떤 것도 다 가질 자격이 있는 너에게 그래서 나는 너무나 부족한 엄마라서.




이제 남은 일은, 나의 방식으로 현실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기적인 나의 꼴을 직시하고, 나의 명백한 기쁨을 최대한 확보하여 우울해지지 않는 것. 그리하여 그 기운으로 힘을 내고, 너와의 하루하루를 잘 채워 나가는 것.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단 하루도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지 않고 성장하는 너처럼, 나도 조금은 덜 이기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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