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의 끝에 다시 만난 '시작'
마음이 이렇게 촉촉할 일인가.
내리는 비만큼이나 촉촉하고, 그래서 먹먹한 마음이 자꾸만 한가득이 들어찬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다른 어떤 감정보다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니.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일일까. 이제와 갑작스레 깨닫건대, 그렇게 내려놓고 현재에 행복하고자 노력을 너무 한 나머지 이젠 너무 내려놓음에 익숙해졌나 보다. 현재 상황에서 행복을 찾고, 이만하면 됐다고, 더 하지 않아도 이 정도면 행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짐하듯 그렇게 열심히 달래 놓았는데.. 그래서 이제야 겨우 내려놓음이 익숙해지고 납득되기 시작했는데 이제와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하다니 그 걸음이, 손짓이 어색하다.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서 나의 지난날 업적을 나열하고, 정리한다. 벌써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가 어언 9년 차. 그간의 실적을 정리하는 일은 부득이 과거의 부단했던 삶을 들추는 일이 된다.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안달복달 살았던 나의 흔적을 보는 일은 여전히 아프다. 이렇게 내려놓기까지, 나는 나의 야망과 욕망을 얼마나 많이 부정해야 했던가. 뭔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그렇게 괴로워하며 치열했던 시간들에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부득불 주워 삼킨 말들이 다시금 면도날을 삼킨 듯 불편하고 아프게 올라 온다. 그래도 나, 이렇게나 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여전히 나에게 그저 그렇게, 적당히란 없는 것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자, 하고 시작했지만 하나도 가볍지 않다. 시작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뇌는 알 수 없게 24시간 몰입 모드가 되어 잠시간의 멍 때림도 용납치 않고 한 주제를 떠올리며 돌고 있고, 그리하여 스트레스받은 위와 장은 벌써 꼬이고 쓰리고 난리가 났다. 이래서, 이렇게나 스트레스받는 성격인 게 내려놓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었지.. 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한치도 변함없는 몸 상태. 아니 대체.. 뭘 그리 주제넘게 잘하고 싶을까. 욕심.. 욕심.. 내 욕심에 배가 불러 토할 것 같다.
담담해지고 싶다. 아등바등이 아니라 담담하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주어진 기회에도, 주어진 시련에도 똑같이 담담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고 어디로..? 나의 흔들림은 모두 방향성이 부재한 탓인가. 아니다. 아니야. 방향성이 정해지면 나는 또 조급해하고 아등바등거리지 않을까. 담담해지고 싶다. 담담해질 수 있는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답을 모르는 질문에 자꾸만 울컥, 눈물을 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