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그렇게 '심플한' 행복은 없다

by 시선siseon

옛날에는 부러운 것이 참 많았다. 누구는 날씬해서 부럽고, 누구는 똑똑해서 부럽고부터 시작해서 어디 외국에서 살고 있으면 부럽고, 어떤 직장이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면 부럽고. 부럽다는 말을 심심찮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럽다는 말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말 뿐인가, 진심으로 무엇인가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남부럽지 않게’ 완벽하기 때문일까. 그럴 리가. 인생에 완벽이 어디 있나. 그저, 이제는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아기를 시부모님께서 봐주시는 덕분에 나는 여전히 내 일을 할 수 있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기를 키우는 어느 엄마가 봐도 부럽다는 말이 쉬이 나오고, 어르신들은 나 때는 그런 일은 상상도 못 했다며 손사래를 치시기도 한다. 맞다. 아기를 키워주시는 시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은 매우 축복받은 일임에 틀림없다. 늘 감사하고, 다행이고, 또 감사하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내 모습 뒤에는 내 엄마의 눈물도, 주말부부의 애환도 있다. 남부럽지 않게 키워 놓은 딸, 번듯하게 남들처럼 예물에 예단 다해서 보내고 싶던 우리 엄마 가슴에 나는 대못을 박고 결혼했다. 나는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당장 여유는 없는 남자 친구지만 나는 이 사람의 능력을 믿으니까, 내가 사랑하니까 빚잔치를 하더라도 둘의 돈만으로 간소하게 알아서 다 하겠다고 그렇게 엄마를 내 결혼식에서 내쳤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오히려 효도고 독립된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아기를 낳은 지금, 그때 나의 패기는 그저 해맑은 겉멋에 불과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인생을 소중한 한때를 바쳐 키운 자식이 머리 굵었다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테니 이제 부모는 손 떼라고 말하는 몰염치함. 물론 다 커서도 부모한테 들러붙어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는 것도 몰염치 겠지만 나 또한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부모의 입장과 감정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세상 혼자 큰냥 굴었다 - 결국 내 엄마는 알았다고 하시고선 나 몰래 내가 한 냥 일가친척에 옷 한벌씩 돌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도리는 따로 다 하셨다 - 그런데 그 당시 내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우자로 고른 남자도, 시부모님도 엄마 딸을 평생 하고 싶은 일 하게끔 지원해주겠다는 것, 신랑은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시부모님은 상견례 자리에서 내가 일할 수 있게 나중에 자식 낳으면 키워주겠다 하신 그 말에서 그냥 소위 모든 서운함을 ‘퉁’ 치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딸이 자신처럼 애만 키우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인생을 살지 않길 바라셨기 때문에 나는 나의 몰염치에도 엄마와 큰 갈등 없이 결혼식을 해맑게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엄마의 바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남편과는 주말부부, 시부모님 댁에서 남편 없이 애기와 둘이 지내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아기를 보며 나 또한 출퇴근하는 삶을 산다는 점에서 그저 감사한다.



이렇게 점점, 알게 된다. 인생, 가까이서 보면 때로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희극이라고 타인의 어떤 인생을 보아도 그것이 그저 한 단면뿐이라는 것을 안다. 멀리서 보는 삼자에게 희극인 그 모습이 어떤 다양한 면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는 감히 짐작조차 불가하다는 것을. 그러니 하물며 함부로 남의 인생이 부럽다, 안 부럽다, 혹은 심지어 그에 비하면 나는 불행하다, 아니면 행복하다 따위의 판단은 그저 자기중심적인 자위에 불과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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