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방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며

일장춘몽 eps.1

by 시선siseon

파리한 얼굴의 그녀가 호텔방 창문을 열고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있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건 도시의 소음. 적당히 관광객들로 붐비는 골목이 내려다 보인다. 형형색색의 옷차림과 카메라, 가방, 신발. 어느 것 하나 의미 있게 바라보지 않는 그녀에게 그들의 움직임은 그저 알록달록한 색의 조합으로만 인식된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그녀는 문득 생각한다. 늘 꿈꿔왔던 순간이다. 적당히 포근한 호텔방. 뒤치다꺼리할 주변인이 아무도 없는 고요함. 낯선 도시로의 무계획적인 여행.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는 곳에서 따뜻한 커피와, 일탈이 필요한 순간에만 찾았던 담배 한 개비 정도. 눈앞에는 언제든지 세상과 접속이 가능한, 특히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이 펼쳐져 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행복한가.


행복하다라. 행복이라는 것은 애당초 그저 주어지는 법이 없었다. 내가 행복을 정의하고 지금 상황을 정의하면, 행복이 그에 맞춰져서 온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 정도면 행복하지라는 생각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돌리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은, 그렇다. 내가 꿈꾸던 상황의 한가운데 있으니,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은 적막이 그리웠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막이 가져다주는 설렘. 적막한 상황에서 새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불확실성이 그리웠다.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더 이상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그래서 매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적막을 꿈꾸었다. 그러니 적막은 시작이자 필수 불가결한 조건 정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은, 하릴없이 멈춰있는 온몸의 움직임과 달리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과거를, 떠나온 과거를 재생하는 뇌를 좀 멈추어야겠다. 이 장소에 오기까지의 기억. 내가 했어야 했을, 혹은 하지 말아야 했을 그 모든 일들을 반추하고 곱씹는 일부터 제발 멈추고 싶다. 몸의 움직임을 멈추는 일은 머릿속 생각을 멈추는 일에 비하면 너무나 쉽다.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는 그녀는 사실 뇌가 너무 바삐 움직여 차마 몸을 움직이는데 쓸 에너지 조차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안다. 이 모든 생각을 멈추는 일은 그녀가 스스로 그 모든 상황을 납득해야만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사건과 일상들을 기억할 때마다 심장을 쥐어짜는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 어차피 멈추어지지 않을 것, 실컷 질리도록 해보자고 생각을 바꿔본다. 잔뜩 풀어 엉긴 실타래를 다시 동그랗게 묶어내듯, 그렇게 묶어 낸다음 지옥 끝까지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묶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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