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집안일의 평행이론

by 시선siseon

1.


해질녁, 잘 가꾸어진 정원에 하루의 마지막 해가 드리운다. 이제 곧 사라질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무색의 빛깔이 붉게 색을 드러내는 중이다. 여기저기서 마지막 해를 붙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분주하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했던가. 멀리서 오는 이가 나를 죽이러 오는 늑대인지 멍멍 개인지 조차 구분이 어려운 시간. 사물의 경계가 모호하듯 사람 간 경계 또한 누그러진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낯선 사람에게 쉬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사진 찍어주시겠어요"가 아니라 먼저 찍어주겠다는 호의의 표시로 서로는 셀카가 아닌 사진으로 일행의 단체샷을 손쉽게, 그러나 간신히 한 장 건진다.


2.


아이는 적당히가 없다. 그것은 당연한 것인데, 아이는 늘 '지금 이 순간'을 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재미있는 이 순간이 지나가버리면 언제 또 이 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고, 지금 맛이 있는 이 음식을 더 먹지 않으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예측불가다. 그래서 늘 혼란하다. 아이는 지금 재미있는 이것을 더 하고 싶고, 더 먹고 싶은데 어른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저기 가면 더 재밌는 게 있어. 지금 그만 먹고 나중에 더 맛있는 것 먹자. 아이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만 자꾸 내뱉은 어른에게 아이는 그저 납득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왜죠? 왜 지금 하고 싶은걸 더욱 마음껏 하면 안 되죠? 특히나 어른이 일러준 미래는 늘 곧이곧대로 오지 않기 마련이라, 아이의 불신은 점점 커져만 간다. 미래를 계획하고 납득하는 일. 아이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3.


깨진 유리창의 법칙. 유리창이 한 장이라고 깨어져 있는 곳에 또 다른 유리창을 깨기란 매우 쉬운 일이지만, 한 장의 유리창도 깨지지 않은 곳에서 유리창을 깨기란 어려운 법이다. 나는 늘 엉망진창이 된 내 집을 보며 이 말을 떠올린다. 이미 어질러져 있는 공간을 더 어지르기는 너무나 쉽지만 깔끔이 정리된 집을 어지럽히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세 돌짜리 아가에게도 적용되는 진리다. 내 경우엔 뭐랄까. 정리되어 있는 집을 추가로 정리하는 것은 꽤 할 만 하지만 하나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집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것은 너무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 옛날 어머니께서 꼭 바쁘게 나가기 전에 그 시간을 쪼개어 집을 정리해두고 나가시면서 '사람이 뒤가 깨끗해야 한다'라고 말하실 때, 늘 답답하기 그지없었더랬다. 아니 꼭 왜 바쁠 때 정리까지 한다고 난리실까. 갔다 와서 하면 되지. 그러나 그 이유가 이런 큰 그림에 의한 것이었던가, 하고 새삼 의문을 품어본다. 집이 어질러진 채로 외출하고 돌아오면 옷도 아무 데나, 오자마자 장난감을 신나게 펼쳐대어 집은 점점 더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지만 나가기 전 그 바쁜 시간에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정리를 해두고 나가면 들어와서 옷도 제자리, 다시 어질기 까지 시간을 벌 수 있으며, 그래서 정리된 집이 유지될 확률과 시간을 더 높일 수 있다. 하아. 적고 보니 웬 아줌마의 생활의 지혜 타령 같군. 그저 살자고 하는 일일 뿐인데.


4.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느는 것이 결국 집안일이고, 집안일이 는다는 것은 결국 집안 곳곳에서 내 엄마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니 이해하려 들지 조차 않았던 그 모든 일들을 이렇게 때때로 떠올리며, 엄마의 고난과 힘겨움을 이제야 가늠해 본다. 그러니 내 자식도 지금 이 내 뼛골 빠지는 일상을 이해하려면 20년은 걸리겠지. 참 더디고, 일상은 어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장춘몽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