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 - 원스어폰어타임 인 할리우드와 잡담

by 시선siseon

1.


짧은 단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생각의 호흡이 짧아진 것인지, 글을 쓰기 전에 소재에 대한 사유를 충분히 할 시간 조차 확보를 못해서 그런 것인지, 혹은 둘 다 인지 모른다. 하지만 짧을 때는 또 짧은대로 써보는 수밖에. 글도 리듬이 있고 쓰다 보면 또 긴 호흡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2.


원스어폰어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거장의 작품이지만 언제나 그의 작품은 나의 감성이 아니었기에 별 기대 없이 봤는데,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 꽤 괜찮았다. 역시 그의 방식대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게 무관한 장면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마지막에 그 모든 사건을 엮지만 여전히 깔끔한 기승전결의 이야기는 아닌, 그 다운 영화. 그래도 좋았던 것은 나이가 들어도 멋짐이 폭발하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 그리고 타이타닉의 그 어여쁜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왜 자꾸 울프오브월스트리트 부터 저런 연기만 하는지 왜인지 모르지 않아서 더 짠한 디카프리오의 연기. 새삼 인권이라는 것, 그리고 삶의 질과 웰빙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란 어떠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1960년대 삶의 모습. 그 정도. 그리고 문득 든 터무니없는 생각 하나. 그저 1960년대의 할리우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감독의 의도라면 - 물론 그렇게 심플할 리 없겠지만 - 왜 그냥 우리는 1960년대에 찍은 영화를 그냥 보면 안 되는 거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없었던 그 시대의 모습을 스토리를 배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부각할 수 있어서? 혹은, 그 시대를 연기하는 현시대의 배우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 글쎄다. 여하튼 적고 보니 전자의 의도라면 그럴듯하다. 기승전결의 명확한 스토리라인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 시대의 할리우드가 영화를 본 후 더욱 각인된 듯도 하니 말이다.


3.


결이 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아, 이 사람은 나의 부류. 이 사람은 나와 다른 부류. 그것을 '결이 맞다', 혹은 아니다고 부르기도 하지. 그러나 그 결은 하나의 관점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첫인상처럼 섣부르게 판단했다가 후에 크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결이 맞는 부분과 아닌 부분을 구분해서 인식하기도 하고. 그러나 '결'이라는 것은 결국 나이가 들 수록 맞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기는 불편함 따위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요령과 같은 것일지도.


4.


나의 뼛골과 신체의 안녕을 위해 거금을 주고 청소대행업체를 부른 날. 너무나 아름다운 내 또래의 여성이 방문하여 시작한 청소는 6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청소를 마친 그녀의 손은 그 자신은 인식도 못했겠지만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 나의 뼛골을 대신하여 누군가의 뼛골을 시리게 했구나. 대가를 지불하고도 그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너무나 서툴러서 딱 봐도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음이 여실한 내 또래 그녀에게 너무 감정 이입을 한 탓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집안일의 평행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