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를 마쳤다.
가족을 남처럼 대하고 싶었던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옵션은 아니었으나, 결론적으로는 처음으로 대가족 10명이 모이는 집들이를 해낸 셈이다. 무려 해냈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에겐 응당 자연스러울 만치 너무나 큰 일이었고, 고달팠고, 그래서 끝나고도 개운치 않은 뒷맛에 더불어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달랠 길이 필요했다. 더 이상 살가울 수 없는 아빠,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닌 데다 자식에 대한 기대치는 언제나 높아서 단 한번 만족시키기가 어려운 엄마, 편한 적 없었던 남동생, 그나마 가장 가깝지만 늘 아직도 너무나 손길이 필요한 두 아가들에 치여 고달픈 언니, 거기에 집에 낯선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이 왔다고 제정신이 아닌 아가, 그리고 이 자리가 편할 리 없는 너무나 결이 다른 형부. 모두가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대식구. 한 때는 매우 잦은 모임과 살가움이 - 무려 10년 전쯤, 모두가 젊었던 시절 - 있었으나 모두가 나이 들고 각자의 가정과 사정이 늘어가며 결국은 서로의 불편함만을 매번 확인하던 모임들이 있었던 터다. 굳이 다시 이어 붙이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섣부르건만 하필 이사를 했기에 이 모임의 무려 호스트가 되어버린 나는 결국 그 피곤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모임 와중에 방에 숨어 한두 시간 잠을 자고, 자고 일어난 뒤 두배로 무거워진 몸을 풀고자 샤워를 해댔다. 그만큼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럽지도, 편치 않았던 모임. 사람을 챙기고 모임을 주도한다는 것 자체가 서툴러서 그랬다고, 이 불협화음을 정의해버리고 나면 좀 편할까. 사실은 아픔으로서 가족 안에서 역할이 변해버린, 더 이상 챙겨주는 사람이 아닌 챙겨줌을 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엄마가 주는 낯섦이 온 가족에게 미치는 어색함, 혹은 이기심을 못 본 척하고 싶은 걸까. 시간이 해결해줄 리 없지만 오늘 같은 밤엔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