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나의 허상이 부른 것

by 시선siseon


아이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 집은 주택단지라 골목마다 차가 많아 빠져나가기도 힘든데, 늘 차들이 마주쳐서 혼잡해지는 구간이 있다. 반드시 한 차가 후진으로 양보를 해야만 모두가 빠져나갈 수 있는데, 꼭 어느 쪽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서로 후진하지 않고 버티는 경우, 혹은 비켜주는 데에도 운전이 미숙해 상대가 미적거리거나 하다 못해 깜빡이도 안 켜서 예측할 수 없는 운전으로 골목을 더욱 혼잡하게 만들 경우,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늘 사는 사람들은 이 사정을 알기 때문에 적당히 잘 비키고 해결이 되기 마련이지만 동네를 방문하는 차들이 여러 대 꼬이면 답이 없다.




오늘도 문제없이 빠져나가나 했더니 밀고 들어오는 차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 정도면 서로 지나 가지겠다 싶어 옆으로 비켰더니 미적거리다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욕을 잘하지 않는데 대뜸 또 욕이 터져 나왔다. '뭐야 실컷 비켰더니 뭐 운전을 저따위로 해!'




평소에도 화가 많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고서는 더욱 화가 많다. 시도 때도 없이 욱하는 게 스스로에게 스트레스가 아닐 리 없고, 특히 화의 근원은 '대체 왜 저래?'라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할 수 없음을 동반하기 때문에 화를 내고 나면 오히려 스스로 고립되는 기분이다. '나만 그런가?' '내가 이상한가?'




오늘 배철현의 '심연' 책에서 '보는 것'에 대한 이런 글귀를 봤다. 그저 보이는 것을 보는 것. 즉 아무 의지나 사유가 없는 시선은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이고 수동적인 시각적 반응인데, 그렇기에 이때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자신의 안목에서 비롯한다고. 아무 의지나 사유 없이 자신의 과거 습관, 편견, 자신만의 기준으로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이는 것만 보는 시선이 '고착화' 되는 것. 이것을 '무식'이라 한다 했다. 이 무식의 특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화를 쉽게 내는 것과 또 하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해를 끼친다는 것.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놓은 허상 속에 대상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허상과 실제 대상이 불일치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사리 폭력을 행사한다. 일상에서 자주 화를 내고 폭력적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 배철현, [심연] 중




그렇다. 어떤 상황이든 그것이 '화'로 이어진다면 나의 상을 '선'과 '상식'에 놓고 상대의 상을 '악'과 '비상식'에 놓는 것일 테다. 그렇지 않았다면 화가 아닌 '상이함'을 느끼는 데서 오는 어색함, 불편함 정도를 느껴야 맞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느꼈던 고립감도 이해가 된다. 누구 하나 같은 사람이 없을진대, 내가 가진 시선에만 갇혀서 다른 '상'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나만 그런 것'이 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덜컥, 간담이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화가 났던 모든 순간은 사실 대부분 내가 만든 '허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아니다. 넓게 보면 내가 가진 어떤 부분의 상이라는 게 누군가가 가진 상과 같을 수 있고, 그것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것이 인간관계이고 사회생활의 기본 일지 모른다. 그러니 내가 가진 모든 상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아무 의지나 사유 없이 나의 과거 습관, 편견,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이 고착화되는 순간, 세상에는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가 되고 이것은 시도 때도 없는 화를 동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그러니 나를 위해,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나의 허상을 경계해야겠다. 오늘 나는 얼마나 화를 냈는가? 그 화가 '나의 허상'만을 긍정하는 데에서 온 화는 아니었는가?




(1,869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낮의 유희 '커피', 밤의 마왕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