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주변에 그런 말을 많이 했다. 부모의 역할은 그저 '보호자'일 뿐이라고. 그 아이의 인생에 생각보다 부모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크지 않고 그저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만 제대로 하면 그뿐이라고.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를 늘 이렇게 제시했다.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딱히 부모로부터 무언가 지속적으로, 혹은 거대한 영향을 받은 것을 꼽을 수 없다고. 그러니까 부모가 무언가를 나에게 해주지 않아서 내가 지금 무엇이 되지 못했다거나, 부모가 무엇을 해줬으면 내가 어떻게 변했거나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는 들지 않는다는 거다. 부모는 그저 기본적인 환경을 제공해주고 여러 의견을 제안하는 사람이지 그들이 자녀의 인생의 주도적인 역할은 할 수 없으며, 적어도 나에겐 확실히 그러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내 아이에게 가지는 부담감도 일견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어떻게 하든 기본적인 환경만 잘 제공하는 최선을 다하는 한,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잘 클 것이라고.
그런데, 오늘 책을 읽다가 개인이 가지는 결핍과 그 결핍을 불러오는 트리거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문득, 나에게도 '특정 결핍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트리거가 존재하며, 심지어 그것이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라는 인지가 이루어졌다.
일단, 나에게도 금방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상처 받고, 절망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좌절하고 의심하게 되는 반복적인 상황, 즉 '패턴'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 나는 상대방과 무언가 갈등 상황이 발생하여 불편한 상황에서 상대가 먼저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와, 나는 상대와 대화하고 싶은데 상대가 그런 의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이 되면 쉽게 결핍의 상태로 빠진다. 상처 받고, 절망하여 화내고 좌절하며 의심한다. 이 상황을 상기하며 질문을 던진다.
1.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가? (감정)
2.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 그것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가? (신체 느낌)
3. 무슨 생각이 드는가? (생각)
4. 그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행동)
그 상황을 다시 생생하게 떠올리며 답해본다.
1. 외로움과 슬픔, 분노이다. (분노)
2. 심장이 뒤틀리는 것 같고 머리가 뜨끈뜨끈해지는 것 같다. (신체 느낌)
3. 상대방이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없어져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나는 대화하고 싶은데, 상대는 원하지 않으니 거절당하는 기분이 든다.
4. 극단적인 상황을 만든다. 당장 헤어지자든지, 상대를 격분하게 만들어 더 큰 갈등 상황을 만든다.
이 상황을 관찰하는 자가 되어 이제 다음 질문을 던져본다.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상대방이 존재하는 상황. 그것이 트리거를 유발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이런 감정이 어디서 온 걸까?"
이제 내 이성이 이런 질문에 기억을 스캔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전혀 예상치 못하게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나에게 화가 났을 때다. 혹은 그저 내가 심심할 때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4학년쯤의 나의 모습이 떠오르고, 화가 난 엄마가 나를 바라보지 않고 등지고 앉아 TV를 보고 있다. 나는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엄마는 나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 잘못했어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엄마의 화가 쉬이 풀릴 것 같지 않다. 그저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고, 엄마와 대화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 순간을 계속 버티고 있다. 아프다. 괴롭고, 힘들다.
1. 아이의 감정이 어떨까? - 슬픔, 무기력함, 고통
2. 아이가 몸의 어디서 그것을 느낄까? - 심장, 머리
3. 아이의 생각은 어떨까? - 엄마는 나에게 다가와주지 않을 거야, 외로워.
4. 아이가 어떻게 행동할까? - 무기력하게 짜증이 난 상태로 있다.
여기서 나는 옛 사고 패턴이 고스란히 현재로 옮겨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렇게 묻는다. "이 상황에서 내면의 아이는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할까?" 답은 곧 나온다. "안정감. 그리고 나를 바라봐주고 질문해 주는 것, 나와 함께 있어 주는 것"
이제 나는 내면의 아이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말을 해준다. "내가 너를 바라봐줄게. 너에게 말 걸어줄게. 너는 혼자 버려져있지 않아. 내가 함께 있을게"
나는 자신만만했었다. 나는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없다고. 적당히 방관된 채 커온 과거가 나는 좋다고. 그러나 이제 깨닫는다. 나에게도 돌보아야 할 내면의 아이가 있었다고. 그것은 부모의 일방적 잘못에서 연유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저 '아이'였기 때문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처가 있었고, 그 어린 시절의 경험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게 된 기본적인 결핍감이 있었다. 이제 알았으니 남은 일은 매일 꾸준히, 그 아이를 떠올리는 것이 더 이상 아프거나 슬프지 않을 때까지 보살피고 안아주는 것이겠지. 이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만으로도 지금은 왠지 마음이 조금 홀가분하다. 꼬인 줄도 모르고 꼬여있었던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탁, 하고 조금은 풀리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