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공대 회의에 임하는 문대인의 자세

by 시선siseon

공학자로만 구성된 회의를 오면 늘 느끼는 위화감이 있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로 형상화되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로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즉, 그들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거나 다루어질 주제가 아닌게다. 그러니 보통 이런 회의에 참석할 때는 큰 틀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와 그 결과물이 어떤 형태로 보이는가 정도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사실, 초기에는 이런 회의에 참석하고 난 끝 맛은 보통 열등감이 지배적이었다. 내 분야는 아니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나 논리적이고 치열해서 그 자체가 매우 멋있어 보이고, 그래서 더 뛰어나 보이고.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너무 두루뭉술했던 것은 아닌지 괜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반복되다 보니, 그리고 이제 좀 컸는지(?) 이제 보는 시야가 좀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그들의 세계는 논리적이고 치열하지만 그것이 곧 내분야,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명백히 다르고, 그 일의 가치나 크기는 주관적이다. 그러니 더 이상 비교하며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얼마 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흔히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사실은, 그리고 현실은 다르다. 사람의 존재 자체는 귀천이 없지만 직업에는 확실한 귀천이 존재한다. 같은 시간의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더 많은 보수가 지급되는 일이 있다. 그러기에 높은 보수를 받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보통 감당해야하는 학습의 기간이나 학습의 강도가 더 길고 높다. 그러니 준비과정의 벽을 견뎌내느냐에 따라, 특히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든지 의사 면허시험을 통과한다든지 버텨내기 어려운 벽을 견뎌내는 일과 30분 정도 구두로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같은 보수를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보수, 임금의 수준으로 본다면 직업의 귀천은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직업을 선택할 때 이런 부분을 잘 설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조금의 노력을 들인 대신에 보수를 적게 받는 일과 오랜시간 강도 높은 노력을 들인 대신에 보수를 높게 받는 일.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본인의 성향과 가치에 맞는지를 인생을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설명을 보태면, 노력을 적게 들여서 보수는 좀 낮을 지언정 인생의 자유도가 높게 살 것인지, 강도 높은 준비로 보수는 높으나 인생의 자유도가 낮은 삶을 선택할 것인지도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중요한 것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가장 핵심이 되는,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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