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유무를 그 행위에 대한 선호도로 결정지을 수 있는가
조금 흥미를 붙일만 하면 금새 다른 것에 흥미가 생겨버리고, 약간 할 줄 알게 되고나면 더 잘 하기 위한 과정에서 멈춰버리고 하는 주의력 결핍적 기질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전형적으로 그런 타입이라서 뭔가를 끈덕지게 매달려서 한 경험이 많지를 않다. 예전엔 이것이, 저것이 어떤 특정한 목적이 나랑 안 맞거나 싫어서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냥 뭔가 '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요새는 집돌이나 집순이라는 표현으로 그렇게 발휘할 에너지가 적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된 상태이지만, 나는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을 그렇다고 많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도대체 스스로가 어느 포지션에 속한 건지 헷갈리게 됐다. 공상 속에서는 분명 하고 싶은 걸 부지런히 실행해내고 있는데, 내 손에 쥐어진 결과물은 딱히 없다.
뭔가 하자고 마음 먹었다가 흐지부지되는 경험이 쌓이면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무너진다. 그래서 무언가를 완수할 자신감이 없어지니, 무언가를 하기 전부터 지쳐버리게 된다. 사회 생활을 하고 내 전문 분야가 생기면서 실행력이 더 붙긴 했지만, 진짜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 앞에서는 다시 그 패턴이 나타나곤 했다.
그 중 하나가 글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점수 매길 수 있는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항상 문이 열려 있음에도 나는 그 문을 두드리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으로 내가 '글쓴다'는 행위에 대해 진지해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국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신문을 활용한 논설문 쓰기 과제를 내주셨고, 처음 제출한 논설문을 보고 가장 잘 쓴 글이라며 교실 앞에 대표로 서서 그 내용을 낭독시키셨다. 그 경험이 어쩌면 처음으로 내게도 제대로 된 재능이 있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꿈을 줬고, 나는 또 칭찬을 받기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논설문을 썼다.
그 경험이 글을 써서 그것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는 데 이르렀고, 결국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 그때까지는 나는 글쓰는 것에 자신이 있었고, 좋아하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영화 연출 공부를 하면서도 교수님들이 내게 글쓰는 재주에 대한 칭찬을 많이들 해주셨다. 진지하게 시나리오쪽 작가로 제안을 주신 경우도 있었고, 상업 영화 제작자에게 내 글을 보여주어 그 분이 관심을 보였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글 쓰는 게 싫어졌다. 영화를 만들고 학점을 따기 위해서 필히 써야 하는 과제였고, 그것은 교수님들과 동기들과 다양한 관객들을 통해 검열당해야 했다. 그렇게 나를 담금질하고 계속해서 검열하고 하는 과정이 나는 좀 버거웠다. 온전한 내 생각과 세계관을 글이라는 것으로 배출해서 내보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을 넘어서 때로는 창피하기도 했던 것 같다.
졸업을 하고 영화 일을 조금 하다가 관두게 됐고, 지금의 분야로 넘어오게 됐다. 정답이 주어져 있고, 정확한 할당량이 있는 회사 생활이 나에게는 좀 더 맞았고, 그렇게 밥벌이는 하게 되니 우울이나 심연과는 멀어져 글쓰는 것도 게을리하게 되었다. 종종 글을 써보자 마음 먹고 노트북을 펼쳤지만 몇 줄을 쓰다 금새 멈추곤 했다. 대학교때 계속 해야 했던 자기 검열을 지금은 전공도 일도 아닌데도 하고 있던 것이다.
지금도 글을 쓴 걸 가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름 잘 쓴다는 칭찬을 듣는다. 칭찬은 물론 기분이 좋지만,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래, 재능이 있다 치자. 그런데 하기 싫고 괴로운데 그게 내 재능이라고 할 수 있나?
반대로 내가 하고 싶은데도 재능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예전부터 개그맨들을 보며 동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사람을 웃기는 재주는 딱히 없다. 사람을 폭소까지 하게 만드는 건 진짜 천부적인 재능과 감각이 없으면 못할 일이니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다. 만약 내가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면 진지하게 개그맨 도전을 해봤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고, 심지어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을 때 나는 그 일에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하기 전에 그것이 왜 그다지 내키지 않았었나? 심지어 사람들이 인정해주는데도 말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니 어느 정도 답이 보인다. 진실을 직면하기 싫은 것이다. 재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재능이 없었어, 라는 판정을 받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잘 하고 싶고, 잘 한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은 그저 그런 정도의 재능이었다는 걸 똑바로 직면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머리로는 인정할 지라도 마음으로는 인정하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내가 그 동안 사람들에게 잘 한다고 들어왔던 것들 중에 제대로 된 결과물로 쌓은 게 없는 것은 계속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내 재능의 유무를 검증하고 판단할 기회를. 계속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 실력은 안할수록 마모되어 가는 데도 말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의 의문이 생기게 된다. 재능이 없어도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할 줄 알게 되면 그건 또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건 다음에 주제로 다뤄보기로 하고, 우선 용기를 가져보기로 했다. 내가 진짜 재능이 있는 게 맞는지 판별할 수 있는 기회를 직면할 용기 말이다.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당연히 재능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쪽에 배팅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니 말이다.
그 행위 자체를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재능의 유무 여부를 직면하는 게 싫은 거였다면 이제 직면해보자.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테스트부터 해봐야하니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테스트는 시작되었고, yes or no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정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테스트의 결과가 그 일을 잘할 뿐 아니라 좋아하기까지 한다는 데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