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열심'이라는 재능에 대하여

노력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능이 있으니 노력하는 걸까?

by 아임낫체리

학교 수업만 듣고 학원이나 과외를 따로 딱히 하지 않아도 시험 만점을 받는 친구와 독하게 공부만 하는데도 자꾸 시험에서 미끄러지는 친구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공부에 재능이 있는 친구는 누구일까? 대부분이 당연히 만점을 받는 친구가 공부에 재능이 있는 거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공부에 대한 재능일 수도 있다고 본다. 공부가 너무 싫은 친구들은 절대 그렇게 독하게 공부만 붙잡고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어떤 일은 오래도록 연마해야만 장인처럼 할 수 있게 되고, 어떤 일은 타고난 DNA부터 달라야 잘 할 수 있게 된다. 전자의 경우에도 미세한 차이로 더 뛰어난 자와 조금 뒤쳐지는 자가 나뉘어지지만, 그 차이가 치명적이진 않은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오래도록 연마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고 본다면 1%의 천재 외에도 재능이 있는 사람은 수두룩할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평생 끊이지 않을 논쟁이 있다. 노력도 재능인지에 대한 논쟁이다. 그에 대한 연구도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을 만큼 인류의 존속에서 그건 중요한 이슈이다. 사람들은 타고나지 못한 조건들을 극복하는 성공기에 열광하고, 타고난 자들을 동경하거나 시기하기도 한다.


'노력'과 '열심히'라는 말에 가장 거부반응이 심한 세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그 주제는 나 또한 매일 생각하게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어떤 부분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보다 어떤 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하지 않았을 때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다는 거다. 나는 뭘 해도 중간 이상은 한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은연중에 깔고 그다지 간절하지 않게 살아왔다. 주어진 책임이 있으면 책임을 다 하려고 하긴 하지만, 진짜 열심(熱心)을 다 하는 경우는 적었다.


나는 왜 열심히 하는 게 힘들었을까? 성인 ADHD라서? 그 일에 재능이 없어서? 아님, 그냥 흥미가 없어서?

만약 누가 봐도 글을 잘 쓰는 명필이라 하더라도 열심히 쓸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기에 재능이 없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를 통해 정말 글을 쓰기 싫은 날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200자 원고지 20매를 쓴다고 얘기한다. 소설 또한 그가 즐기는 마라톤처럼 그렇게 꾸준히, 지루하게, 그러면서도 지독하게 이어나가야 하는 '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투는 절대 아니지만 글을 쓰는데 관심이 있거나 글을 쓰는 업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작가의 기본 덕목에 대한 가르침을 준 거다. 그것이 '옳다'는 결론은 너무 명백하게 났다. 그렇게 트레이닝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스타 작가이니 말 다 했지.


하루키같은 스타 작가는 무조건 천부적이고 신적인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못하는 생각을 하고, 우리가 못 쓰는 글을 쓸 것 같지만 그도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거였다. 반짝하고 주목받는 작가 중에 띄엄띄엄 작품을 낸 사람들은 실제로 롱런하지 못했다. 가장 이름값 높고 유명세가 안 아쉬울 것 같은 거장들이 오히려 다작을 한다. 영화계나 다른 영역도 다 마찬가지다.


재능이 있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게 베이스라는 명제는 이미 어느 정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된 것 같다. 다만 그 노력이 왜 누군가에게는 당연하며 쉬운 것이고, 누군가에겐 대단히 어렵냐 이 말이다.


나는 회사에서 항상 일을 열심히 한다고 들어왔다. 실제로 어느 정도 열심히도 했다. 책임감 때문이었고, 당연히 돈을 받고 생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성과를 내어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조건들 때문에 어느 선까지는 내 몫을 해내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그러나 그 일에 전문성을 더 높이거나 더 잘하기 위해서 퇴근하고 집에서 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한다거나 대학원을 다닌다거나 하는 등의 열의는 가진 적이 없다. 그냥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내 몫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란 생각이었다.


내 노력의 기준이 너무 높을 수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해야 노력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내 자리에서 책임을 다 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대단한 노력이자 열심일 수 있다.


열심히 나를 들이부어서 무언가를 했다가 배신당하는 결과를 마주할까봐 두려운 마음도 분명 있다. 열심히 했는데도 좋은 성과가 나오지 못한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나를 갉아먹은 건가? 그리고 이런 마음이 들 정도의 일이라면 난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재능이 있다면 자신도 생겨서 더 즐겁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넣을 수 있을 테니.


재능과 노력이라는 개념에는 분명 함정이 있다. 이렇게 사람마다 기준선이 다르고, 환경마다 평가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선과 기준을 명확히 정해보기로 했다.


1. 한 자리에 앉아서 2~3시간 이상 그 일을 몰입해서 할 수 있을 것

2. 그 일의 달성률을 수치화할 수 있고, 100이라는 수치를 향해 가기 위해 기꺼이 내 시간을 쏟고 싶을 것

3. 일의 성취도를 다양한 사람(혹은 기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찾을 것


이 기준에 만족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도 할 수 있고, 열심히 할 만큼의 흥미나 재능이 있다는 걸 거다. 최선을 다하자, 노력하면 다 된다, 열심히 살자 같은 말만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현실이다.

그저 그런 평범한 삶을 지속하는 것도 숨차는 각박한 세상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마주봐야 한다. 무언가를 내가 인정할 선까지는 열심히 해야 그것이 재능이자 자신감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열심히 하기가 도무지 싫은 일이라면 애매하게 붙잡고 있지 말고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걸 못하니 늘 머리가 어수선했다. 재능과 노력이란 과일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찢어지고 구멍이 나지 않게 가지치기가 필요한 시기이다.

자, 이제 바구니에서 얼만큼을 버리고 얼만큼을 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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