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투자 광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주식 열풍은 특정 집단이 아닌 전 국민을 주식 투자판으로 뛰어들게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올해 초부터 엄청난 상승세를 보이는 가상화폐 시장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많은 국민이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큰 관심을 보이자 투자 관련 콘텐츠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콘텐츠 산업을 주도하는 유튜브는 물론이고, SBS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에서조차 주식 관련 콘텐츠를 방영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프리카TV 등 개인 방송 플랫폼에서도 주식과 가상화폐 방송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SBS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은 주식을 주제로 방송을 제작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런닝맨은 출연진들이 함께 퀴즈를 풀거나 돌아다니며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주는 SBS의 대표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다. 주 시청자들이 부모와 함께 보는 어린이들이거나 10대~20대 등 젊은 층이 주로 보는 만큼 주식과 관련된 경제 콘텐츠를 다루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10대까지 주식에 관심 가지게 만든 투자 열풍에 힘입어 런닝맨에서도 주식을 주제로 한 방송을 제작했다. 실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었고,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의 과거 주식시장을 각색해 모의 투자를 진행했다. 해당 모의 투자에 현재 주식시장의 모든 종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내 코스피 대표 종목으로 꼽히는 IT, 바이오, 화학, 조선, 엔터, 뷰티, 식품 종목 등이 있었으며 해당 종목마다 각각 호재와 악재로 작용될 정보 등이 제공되기도 했다.
출연진들은 주어진 정보를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주식 투자를 이어갔고 누군가는 큰 수익률을 내고 다른 누군가는 큰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해당 방송에서 양세찬은 2011년 50만 원의 시드 머니로 시작해 5년 연속 수익을 내는데 성공하며 5,700만 원까지 불리기도 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모의투자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에도 큰 신경을 쓴 것 같다”라며 “막연히 어렵다고만 느낀 주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런닝맨에서 주식을 다룬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방송가에서 주식을 소재로 콘텐츠를 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인기 예능인 노홍철과 딘딘, 김종민 등이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개미는 오늘도 뚠뚠’은 지난해 9월 처음 방송을 시작해 벌써 시즌 3가 제작되고 있다. 특히 실패 연속인 주식 이야기는 큰 관심을 얻고 있는데, 노홍철이 투자한 주식의 수익률이 매번 마이너스이거나 저조한 성적을 보이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선 “노홍철은 주식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또,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도 유명 투자자인 존 리가 출연해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종종 주식과 관련된 인물, 주식으로 성공한 인물 등이 출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주식과 관련된 방송은 지상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제작되고 있다. 특히 MBC의 ‘라디오스타’나 SBS의 ‘집사부일체’ TV조선의 ‘아내의 맛’ 등 경제 관련 방송이 아닌 곳에 주식 전문가나 주식 관련 유튜버들이 게스트로 초대돼 주식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방송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이전에는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여행, 쇼핑 등 소비를 강조하는 ‘욜로(YOLO)’나 ‘플렉스(FELX)’ 등을 지향했다면 지금은 투자와 재테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특히 방송을 통해 어렵게만 느껴졌던 투자와 재테크 등을 쉽고 재밌게 풀어나가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유튜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 인기 동영상 중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단 단어는 ‘내돈내산’이었다. 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을 추천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얻어 가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물론 이런 ‘내돈내산’은 유튜브 업계를 뒤흔든 뒤 광고 논란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시청자들의 니즈가 소비가 아닌 투자나 재테크 등으로 변화하면서 최근 인기 동영상에는 주식, 투자, 비트코인 등에 대한 콘텐츠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투자 열풍은 방송가와 유튜브에서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TV 등으로 대표되는 개인 방송 플랫폼까지 퍼지고 있다. 평소 아프리카 TV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많은 BJ가 최근 주식 혹은 비트코인 등을 방송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기존에 주식 방송을 하고 있었던 bj를 제외하고도 게임 방송이나 토크 방송을 주 콘텐츠로 활용했던 인기 여자 BJ들 역시 주식 콘텐츠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주가 상승과 하락 그래프를 시청자들과 함께 보면서 종목을 매매하는데, 시청자들과 호재나 악재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 주식 투자를 시작한 시청자들은 “해당 방송을 보면서 주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BJ들이 나와 비슷한 주린이(주식+어린이)인 만큼 눈높이에 맞춰 주식을 배울 수 있어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쉽게 알지 못했던 주식용어나 주식 초보들이 흔히 하는 실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투자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근 방송가나 유튜브 개인 방송 플랫폼에까지 퍼진 주식 열풍에 대해 한 전문가는 “막연하게 주식 투자에 어려움을 느껴 투자에 망설였던 많은 개인투자자가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접하면서 더 쉽게 주식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라며 “개인투자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봐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개인 플랫폼의 투자, 재테크 관련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논란도 생기고 있다. 투자 방송의 논란은 아프리카TV의 인기 BJ인 철구의 방송에서 발생했다. 철구는 주식이 아닌 가상화폐를 콘텐츠로 활용했는데, 철구는 방송에서 ‘절대 BJ를 따라 하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띄어놓은 상태로 게스트로 출연한 동료 BJ와 함께 1억 원의 자본금을 활용해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철구는 10여 개의 가상화폐 종목을 살펴보며 특정 가상화폐를 매수했다. 특히 게스트로 출연한 BJ 범프리카의 경우, 투자를 시작하자마자 한 가상화폐를 매매해 5초 만에 80만 원의 수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철구가 매수하는 종목이 계속해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청자들은 특정 종목을 언급하며 해당 종목을 매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40분에 걸친 투자에서 400만 원의 수익을 기록하고 철구는 방송을 종료했다. 문제는 방송 종료 이후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커뮤니티 등에서 철구가 매수한 가상화폐가 급등하고 철구가 매도하는 순간부터 다시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자 이를 두고 “시세를 조작하는 것과 다름없다”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들은 철구가 매수하는 종목을 지켜본 시청자들이 같은 종목을 매수하고 시세가 오르면 철구는 매도하고 빠지는 식으로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해당 BJ가 처음부터 절대 따라 하지 말라고 언급하기도 했고, 매수하는 것은 결국 투자자의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현재도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중요한 것은 당시 방송을 본 사람이 12만 명이 넘는 수준이었고 이 중에는 10대 청소년들도 있었다”라며 “자칫 돈을 벌기 위해선 가상화폐에 투자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장할 수도 있고 투기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