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움츠러들었던 경기가 차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코스피가 3,000포인트 시대를 열었고 일본 닛케이 지수도 3만 선을 돌파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투자자들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주식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동학개미운동이 일어났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투자자들은 왜 주저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그동안 일본 주식시장은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작년 11월에만 해도 33%가량 치솟으면서 상승세를 보이더니, 올해 초 드디어 닛케이 225지수가 3만 선을 돌파한 것이다. 30년 6개월 만의 일이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의 분위기는 축제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한다. 한 일본인은 인터뷰 당시 "최근의 주가 상승이 실물 경기와 차이가 커 위화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주변에도 주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일본의 투자자들은 주식을 계속해서 팔아치웠다. 30년간의 매도 금액은 무려 68조 원에 달한다. 판매한 금액의 상당수는 외국인이 넘겨받았다. 현재 일본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무려 30%에 달한다. 즉 최근 일본의 증시 상승은 일본 국민들보다는 외국인 투자자와 일본 은행이 이끌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 뛰어들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것일까? 그 원인으로 80년대에 일어났던 버블 붕괴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다방면의 노력을 통해 급격한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85년 미국과 맺은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정부는 시중에 돈을 풀기 시작한다.
일본은행은 재할인율을 사상 최저치인 2.5%까지 낮추고, 대출 규제까지 완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막대하게 풀린 돈은 일본의 주식,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게 된다. 결국 일본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자산 가격이 폭등하는 버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최대의 경제 호황기는 영원하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정부는 과열된 시장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와 세금 인상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결국 부풀어 올랐던 버블은 터져버렸다. 일본 증시 닛케이 지수 역시 1989년 3만 8,915에서 1990년 2만 3,848로 급락했다. 장기 침체가 이어져 2009년에는 7,054까지 추락했다. 그때의 트라우마를 일본인들은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주식 시장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보자.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 내 경제 회복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한다. 지난해 4분기 일본의 실질 GDP는 연율 12.7%나 증가했고 일본의 기업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미국이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등 세계적인 경제 흐름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확산 직후 1만 6,552까지 빠졌던 닛케이 지수는 약 1년 만에 두 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게 됐다. 특히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상승세가 가팔랐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수혜와 수출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의 돈은 아직 은행에 묶여있다. 일본 개인의 금융자산 중 절반 이상은 현금과 예금이 차지하고 있다. 주식 등의 투자 상품은 13%에 불과하다. 요즘과 같은 주식 호황에도 개인투자자들의 돈은 주식이 아닌 예금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예금 평균잔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9.8% 증가한 806조 원이었다.
일본의 버블(거품) 경제 이후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식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지금까지도 예금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내 주식 보유 현황은 외국인 29.6%, 금융기관 29.5%, 기업 22.3%, 개인 16.5% 순으로 개인 지분이 최하위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즉 아직까지는 일본 증시의 상승세가 일본 국민 개인투자자들이 아닌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끌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일본 오카니 증권의 글로벌 리서치 센터 책임자는 "외국인과 일본은행에서 벗어나 국내 투자자가 시장을 지탱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주가 상승의 이익이 자국민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 양극화 현상도 우려해볼 만하다. 한 와세다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부의 양극화가 버블 붕괴 이상으로 위험하다"라고 경고했다. 기회와 위기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제 상황,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현시점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