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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Aug 24. 2021

때때로 잊고 사는 것들

당신과 나의 보통의 날들

 잘 가지도 않던 등산을 오랜만에 가서였을까. 하산길에 발을 삐끗한 이후 한 달 동안 깁스 신세를 졌다. 무거운 깁스를 한 달이나 다리에 달고 있으니  걷는 것도 서 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모든 것이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익숙해지니 불편을 견디는 것에 익숙해졌는데도 갑갑하고 온 몸이 찌뿌둥했다. 집안일은 최소한으로 하는데도 계속 움직일 일이 많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잠깐의 외출도 보행에 제약을 받았다. 깁스 때문에 입을 수 있는 옷도 자유롭지 않고 자연스레 외출 시에도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었고 어쩌다 나가도 불편함이 한가득이었다.  외출 시에는 화장실이 멀거나 계단이라도 많으면 난감해서 한숨부터 나왔다. 깁스로 절뚝거리며 걸으니 원래 좋지 않았던 허리에도 무리가 왔다. 날도 더운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되어보니 그동안 팔다리가 멀쩡했던 삶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나의 일상이 그립고 소중했다. 인간은 참 어리석다. 느끼고 또 잊어버리는 그런 미련한 짓을 반복한다. 아이가 어릴 때 여러 번 다쳐 깁스를 하고 휠체어에 태워 여기저기 다녀야 했을 때 비슷한 경험을 분명히 수도 없이 했건만  또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건강한 삶에 무조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신체 어느 곳 하나 불편함 없는 것에 늘 감사하고 건강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껴야만 깨닫는 나는 참으로 어리석다.

  때때로 잊고 사는 것들을 우리는 불행을 겪고 아픔을 겪어야 비로소 깨닫는다. 작은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말이다. 몸이 아프고 불편한 것은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한들 결국 나 자신이 아니기에 완벽한 이해를 구하기 힘들다. 아프면 결국 자기만 손해다 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테다.

 아픈 발이 너무 불편한데 엘리베이터는 오래 기다리니 에스컬레이터 타자고 말하던 남편에게 화도 나고 보폭을 맞춰주지 않은 채 팔짱 끼고 걸으니 절뚝거리며 질질 끌려가는 상태로 따라가다 짜증도 났다. 잠시 잊어서 그랬고 맞춰주려고 팔짱도 껴준 건데 내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으니 혼자 서러운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걸리적거리고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도 드니 결국 나 자신에게 원망이 들기도 하는 등 서럽고도 복잡한 마음이 생긴다.

 나도 모르게 상대의 이해를 저절로 바라는 상태가 되고 아프고 힘이 드니 신경이 예민해졌다. 몸과 마음이 모두 심약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은 일에도 더 서운한 마음이 들고 만다. 보행의 제약만으로도 집에 혼자 고립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외로워졌다. 장보기며 뭐든 혼자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자존감이 낮아지기 쉬웠다. 잘 웃는 편인 나도 그러했다. 뭔가 집중해야 했다. 안 하던 게임도 해보고 TV며 넷플릭스도 보고 잠도 자보고 하루 세 끼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으로 견뎌보았다. 행동반경은 부엌과 거실이 다였다. 그마저 대부분은 소파 위에 눕거나 앉거나였다. 3kg쯤 되는 깁스가 반나절이 흐르면 10kg처럼 느껴지니 뭘 더 어쩔 수도 없었다.

무거운 깁스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깁스의 불편함에는 적응이 되었으나 빼앗긴 자유에의 열망은 커져갔다.

 '나으면 어디를 가보고 싶다. 나으면 무엇을 하고 싶다. '

창문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코로나로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 바깥을 갈망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병원에서 깁스를 풀어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 해방감까지 느껴졌다. 어디든 불편함 없이 절뚝거리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에 감사했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편해지니 어찌나 살 만 한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내일은 잠시라도 집 앞을 살살 걸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며 행복했다.

 짧은 깁스 생활 동안 나는 사고나 병으로 인한 불편함을 가진 사람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잠깐의 경험으로 장애와 불편함을 견디고 많은 세월을 산 사람을 어찌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다쳐서 깁스를 했던 내 아이에게도 나는 잘해줬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깁스를 해보니 절뚝거리며 걷는 것 자체가 그냥 생활하는 모든 게 불편함 투성이던 걸 말이다.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다녔을 때도 나는 휠체어를 미는 내가 고생했다고 생각했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은 더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불편한 점이 있는지, 힘든 점 없는지 더 물어봐줄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바깥바람 쐬고 싶다고 해서 휠체어 타고 병원 안 공원을 산책만 나가도 깔깔거리며 좋다고 웃던 아이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으니 뭘 해도 더 자유롭고 제약이 없는 것만으로도, 두 팔과 두 다리가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부러울 수 있는 대상이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주위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했을 때 얼마나 건강한 삶을 갈구하고 소망했겠는가.

 인간은 더 겸손해지라고 이런저런 시련과 아픔을 겪나 보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평범하고도 평온한 삶에 감사해하고 불편함을 가진 주위 사람들도 더 돌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주위 사람들이 불행을 겪고 어려움을 가질 때 한 번이라도 더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불편함은 없는지 물어봐 주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귀 기울여 주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생각해 본다. 먼저 물어봐주지 않고 관심을 더 못 가져준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미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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