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

4. 사춘기 청소년 간호일기

by 서로소

"엄마 오른쪽 배가 너무 아파."

아침에 깨우니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얼굴을 잔뜩 찡그린다.

"학교 못 갈 만큼 아파?"

"응. 많이 아파."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걱정이 한아름이다.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아이의 배를 문지르며 병원이 문 열기를 기다렸다. 동네 병원은 잘 모르겠다 한다. 일단 약을 먹어보자고 하여 약을 타오고 아이 상태를 살폈다. 아이는 약을 먹고 잠깐 컨디션이 좋은지 핸드폰을 쥐고 있다가 아프다더니 계속 잠을 잤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만 핸드폰을 쥐고 있을 때는 공부하기 싫은 꾀병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다음 날도 아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다른 병원을 찾았다. 큰 병원을 가보라고, 맹장염일 수 있는 부위란다. 부랴부랴 대학 병원을 갔다. x레이와 초음파까지 찍었다. 맹장염 소견은 아직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어 지켜보아야 한단다.

저녁에 다시 아프다는 아이는 밤이 되자 많이 아프다며 난리였다. 결국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입원이 결정되었다. 코로나로 입원 대기가 한없이 길어졌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해서 12시간은 있어야 한단다. 아침까지는 남편이 돌보고 그 뒤에 내가 교대하기로 했다. 아침 아홉 시에 교대를 한 뒤에도 한참을 기다려 오후 네 시가 돼서야 입원하러 병동에 올라갈 수 있었다. 아직 만 나이가 어려 소아병동으로 올라갔다. 아프다는 아들은 수액을 맞으니 좀 나은지 유튜브만 보고 있었다. 심지어 뭔가를 보며 낄낄대기까지 했다. 책을 좀 보는 게 어떤지 넌지시 물었다가 아픈데 공부시키려 한다고 난리인지라 그만두었다. 많고 많은 날 중에 기말고사가 열흘 남짓 남은 이 시점 입원까지 하니 그야말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부모이면서 학부모가 된 나는 중학교 올라와서 보는 아들의 생애 첫 시험이 긴장되고 떨리는지라 아들이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으나 한없이 낙천적인 아들은 태평했다. 평상시에는 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학원도 아이 의사 존중하며 보냈다가 싫다면 끊고 그렇게 크게 공부 독촉을 하지 않던 엄마지만 첫 시험을 앞두고 하필 등교 주간에 아픈 아이가 안타까웠다. 담임선생님도 그러신 지 매일같이 아이 상태를 묻는 안부 전화를 하셨다. 어른들은 이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니 어쩌나 싶은데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들은 컨디션만 좋으면 유튜브를 주야장천 보고 있으니 내 속만 갑갑할 뿐이었다.

장염 소견이 있는지라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대소변도 받아 그 양을 기록해야 했다. 컸다고 소변통에 소변 받는 건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비우고 난 뒤 제 소변통이 더럽다며 안 만지고 싶어 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였다.


병원에서 결국 달래고 어르며 한 과목의 핵심 요약을 조금 읽어보게 하는 게 다였다. 그것도 웹툰 볼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 보여 권유하는데도 갑자기 아프다며 아픈데 공부시킨다고 삐지는 아이를 달래가면서였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러지 말걸 후회가 되었다. 입원이 길어지니 나 또한 잠자리도 불편하고 간호만으로도 각다분해졌기에 뭘 더 이상 하라고 권유할 여력도 없어졌다. 아이도 시시때때로 아파하니 이제는 시험 따위는 근심에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시험이 대수냐. 건강만 해라. 퇴원 좀 어서 하자.'로 마음이 바뀌었다.

멀쩡하다가도 아프다고 하고 자다가도 아프다고 하니 간호사도 수시로 호출해야 하고 기분도 이랬다 저랬다 하니 맞춰주기도 힘들었다. 아가 때 입원했을 때는 먹이고 놀아주고 기저귀 갈고 노래 불러주는 등 손이 너무 많이 가서 힘들었는데 사춘기 청소년은 손은 손대로 많이 가고 널뛰는 감정 케어까지 보태어지니 이 또한 여간 힘들지 않았다.


다행히 5일 정도 입원 후 주말에 드디어 퇴원했다. 살 것만 같았다. 의사는 장염끼가 있었고 뇨검사에서 신장 쪽 수치가 높아졌던 것이 문제였다며 신장결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는 소견을 말해주었다.

아이가 심하게 아프고 나니 건강이 제일 소중한 것을, 나도 모르게 시험 걱정을 내가 더 많이 하고 스트레스받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니 바라만 봐도 좋았다. 입원까지 했던지라 저절로 학부모였던 내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첫 시험은 다행히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omr카드만 밀리지 않게 쓰고 오라고 엉덩이 툭툭 두드려주며 학교에 보냈다. 결석한 일주일 동안 진도는 또 얼마나 많이 나갔는지 모른다. 아들은 그래도 시험을 며칠 앞두고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입원으로 결석한 기간 동안 하지 못한 수행평가도 해야 했다. 줌 수업을 마치고 나면 다시 학교에 가서 못다 한 거까지 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 만큼 바쁜 아들이었다. 나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말을 강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부모가 아이 대신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릴 적에는 부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만 점점 스스로 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아이는 자란다. 그리고 스스로 해내는 게 많아질수록 아이는 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때때로 잊고야 만다. 육아의 최종 목적은 아이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아이가 안타깝고 안쓰러워도 언젠가는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혼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면서 나도 모르게 가졌던 내 마음을 마치 속속들이 들여다본 것만 같았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지만 내려놓지 못한 것들을 말이다. 부모가 아이를 내려놓는 것이 어찌 쉬울까. 내 아이에게는 기준 높은 잣대를 세우고 남의 아이가 같은 행동을 하면 귀엽게만 보인다. 그것은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에 내 아이에게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품 안에 있을 때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 그것밖에는 해 줄 것이 없다.






이전 03화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