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
5. 청개구리 이야기
<전래동화 청개구리>
옛날 옛날에 엄마 청개구리와 아들 청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아들 청개구리는 뭐든지 엄마가 하라는 것을 반대로 했다. 위로 가라 하면 아래로, 아래로 가라 하면 위로 갔다. 하루는 엄마 청개구리가 강가로 가지 말아라 했지만 역시 아들 청개구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거기에는 개구리를 잡아먹는 백로들이 있었고 백로는 아들 청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엄마 청개구리는 아들을 구하려고 자기 몸으로 막아섰고 결국 크게 다쳐 눈을 감고 말았다. 엄마 청개구리는 죽기 전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산에 묻지 말고 저 앞 냇가에 묻어주려무나."라고 유언을 남긴다. 뭐든 거꾸로만 하는 아들 청개구리가 그렇게 말해야만 비가 오면 무덤이 떠내려가는 냇가에 묻지 않고 산에 묻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 청개구리는 그제야 지난날을 후회하며 엄마의 마지막 유언을 꼭 들어드리겠다고 결심하고 엄마를 냇가에 묻었다. 이때부터 청개구리는 비 오는 날이면 무덤이 냇물에 떠내려갈까 봐 걱정이 되어 개굴개굴 울었다는 이야기이다.
옛날에도 아들들이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전래동화가 전해져 오는 걸 보면 말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아들이 본격적으로 청개구리처럼 굴었다. 그전에 말을 잘 들은 건 물론 아니다. 올라가지 말라는데 기어 올라가고 하지 말라는데 하려고 하니 위험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제지하고 나머지는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주었다. 엄마 말 잘 듣는 아들보다 자기 의견은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j야" 부르면 바로 "싫어"라고 대답하는 '싫어'병에 걸렸다.
"밥 다 됐다. 밥 먹자." "잠깐만."
"으휴, 냄새난다. 좀 씻자." "이따가."
'싫어'는 '지금은 싫어'라는 뜻인 걸까. 이따가, 잠깐만, 조금 이따, 나중에, 좀 더 쉬고, 아주 다양한 부사어도 구사한다.
집에서 주로 사용하는 동사는 졸려, 피곤해, 배고파.이다.
주어는? 목적어는? 없다. 대화하다 보면 어떤 때는 누구를 말하는지 사건의 주인공을 지레짐작해야 되는 경우도 많다. 아들아, 나는 네 머릿속에 살고 있지 않은걸. TT 제발 주어와 목적어를 이야기해 주겠니?
덕분에 엄마의 추론력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너의 뇌 속 전전두피질이 어른이 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라지? 네 편도체가 지금 날뛰는 시기인 거지.
뇌와 호르몬의 영향인 거야... 그런 거야.
기분이 좋거나 게임을 설명할 때는 어찌나 장황한 언변을 펼치는지 모른다. 아빠와 무기를 이야기할 때는 이 아이가 어디 군대를 벌써 다녀왔나 싶을 만큼 빠삭하다. 어디에서 배웠는고 하면 from. 게임이다. 허허. 암기를 그렇게 싫어하는 녀석이 게임 아이템은 줄줄 왼다. 아기 때 공룡이름이며 특징 달달 외울 때처럼.
공원을 지나치다 아이들이 쓰는 물총을 흘깃 보고는
"아빠, 저거 게틀링 건이지?"
"뭐? 게트 뭐라고? 그게 뭔데?"
둘이 신나서 무기 이름을 주고받는다.
"따발총처럼 생긴 거 있어."
"넌 어떻게 그걸 다 아니?"
"..."
그래, 우리가 서로 뭐 깊이 사생활을 알면 뭐하겠니. 모른 척 하자.
심지어 영어 어휘에서 게임에서 쓰던 어휘를 보면 바람을 휘날리며 나에게 달려와 보여주며 신이 난다.
"엄마! 이거 마인크래프트에서 보던 건데 이 뜻이었어!"
마치 유레카! 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 같다.
와, 게임이 도움이 되네. 이거 봐. 이거 봐. 이게 언제 나오냐면 말이야... 게임 이야기를 한참 한다. 나는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은 잘 모르지만(생일 선물로 몇십 달러 결제해 준 기억은 있다.) 너무 신이 나서 이야기하니 열심히 듣고 있다. 광물이며 뭐 그런 게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청개구리 아들이 희한하게 어른스러워질 때가 있다. '어? 아들, 괜찮은 거지? 지금 누구야, 넌.' 이런 느낌일 때 말이다.
늦게까지 뭘 뚝딱거리며 하길래 안쓰러운 마음에
"아들, 어서 자. 할 거 많아? 많이 힘들어?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줘."
하고 머리를 쓰담 쓰담하면
"엄마, 괜찮아. 다들 하는데. 열심히 해야 대학도 가지."
이런 어른스러운 대답을 한다. 아들은 트랜스포머처럼 무언가로 변신 중인 걸까...
아이는 마음을 알아봐 주려하며 공감으로 다가갈 때는 갑자기 철이 든 아이처럼 군다. 나쁜 감정이 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아이의 감정을 만져주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내 마음 알아주는 것,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아니였을까. 엄마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도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엄마에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지라도 아이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아이는 엄마에게 마음을 연다.
그거 아니? j야, 엄마 청개구리가 아들 청개구리 많이 사랑한 거.
아들이 자꾸만 반대로 하니까 결국 아들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죽기 전에 반대로 말한 거야. 그것도 모르고 아들은 냇가에 무덤을 쓰고 개굴개굴 울어댄 거야.
j야,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너와 함께 읽었던 전래동화들이 생각이 난다. 전래동화에 그렇게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지 엄마도 그때는 몰랐었네. 구연동화하며 너와 역할도 바꿔가며 책 읽던 그날들이 그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