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
7. 지랄 총량의 법칙
"다 했니?"
"아니."
"언제 할 거니?"
"글쎄."
이런 대화는 아무리 다정하게 말해도 아이와의 거리를 엄청나게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단지 몇 번 해보고 깨달았다.
"우리 j 힘들겠다. 아휴 왜 이리 숙제가 많니, 진짜! 우리 아들 잡네..."
"괜찮아."
"사랑스럽고 멋진 j야, 일찍 자려면 언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너도 좀 쉬고 싶을 테니 쉬다가 해. "
"응. 나 좀 쉬다가 8시부터 할게."
"그래, 너도 좀 쉬렴. 힘들겠다."
저녁밥 먹고 바로 하면 일찍 잘 수 있으니 좋으련만 아이도 쉬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게다. 쉬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가지만 늦게 잠드는 것이 엄마로서는 안타깝고 안쓰럽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도 할 게 너무 많다. 때로는 게임도 하고 너튜브도 보고 그림도 그리며 저만의 쉬는 시간을 가진다.
잔소리를 안 하려 하지만 늦게까지 붙들고 있을 때는 체력이 떨어져 가는 내 목소리톤이 올라갈 때가 있다. 화를 내는 듯한 말투에 아이도 방어적인 대꾸를 한다.
'삐뽀삐뽀!'
이런 시간 위험하다. 가끔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의 본질은 저 멀리 보내고 말투나 태도를 꼬투리 잡는 싸움으로 번진다.
사람은 인생에 한 번은 지랄 총량의 법칙을 채운단다.
사춘기 때 채우면 다들 그럴 때니 하소연할 데도 있고 서로 이해하는 눈빛과 위로를 보낸다. 뇌가 재정비되는 시기이니, 호르몬 때문이니 탓할 것도 많다. 아이 키우며 한 번쯤은 겪는 마음 수련이겠거니 하며 기도도 하고 취미도 가지며 그 시간을 부모도 이겨내려 애쓴다. 그래도 아직 아이이니 부모가 애쓰며 아웅다웅 지나가는데 청년기나 중년기에 오면 더 큰일이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잔소리하는 부모도 반항하는 아이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서로 좋을 게 없는 상처투성이 싸움이다. 심지어 승자도 없다.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만 낼뿐. 게다가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결국 약자일 뿐이니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셈이다.
불확실성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그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생이 괴로워진다. 아이들의 성장기가 그러하다. 누구도 과거에 기대를 걸거나 희망을 갖지 않는다. 미래를 가진 아이들이기에 희망을 가진 존재이며 그들의 미래는 그러기에 불확실하다. 불확실성과 안정은 공존하기 힘들다. 불확실성을 가진 아이들이 불안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바라본다. 몸과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감당해나가야 하는 너도 많이 힘들 거라는 걸, 열다섯이라고 삶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