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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Oct 27. 2020

정리의 時間 보고서

정리의 時間 보고서(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

코로나로 바깥출입이 여의치 않고 아이도 학교에 못 가는 날이 많으니 식사며 여가생활까지 거의 모든 삶은 집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저 바깥이 우주라면 우리 집이 우주선 같았다. 꼭 필요한 때에만 나는 집 밖인 우주를 이제 필수 불가결한 산소 탱크와도 같은 마스크를 하고 여유라고는 하나 없이 필요에 의해 나가고 들어 왔다. 집은 정말 봐줄 수 없을 만큼 정리가 안 된 혼돈의 상태, 카오스 그 자체였다. 이웃, 가족 간에도 조심하고 서로 오고 갈 일도 없으니 더더욱 그랬다. 아이의 긴 방학이 끝나고 산뜻한 봄이 오면 대대적으로 집 안팎을 정리하고 청소도 했건만 올해는 코로나를 핑계로 무기력해지는 나의 정신력을 부여잡기도 바빴다. 청개구리도 아닌데 바쁜 일상 속에서는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살아지더니만 매일이 휴일도 아니고 평일도 아닌 상태가 되니 시간이란 것이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그림 속 시계처럼 한없이 늘어졌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마치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 나날이 지속되어 갔고 쌓여갔다.

손님이 빗자루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우리 집을 방문하고 오고 갔으면 어찌 정리라도 한 번 했을 텐데... 정리정돈에 워낙 소질이 없는 내게 손님 방문과 같은 동기조차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거실에까지 책이 그득 쌓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휴관을 하는 바람에 책을 빌리지 못하게 되면서 나는 온라인 서점의 등급이 높아지는 길을 선택했기에 읽은 책과 읽지 못한 새 책들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한때는 쌓이는 책이 흐뭇하기까지 했으나 그나마 깨끗했던 거실까지 짐이 쌓이는 듯한 기분이 드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쌓아둔 책더미들과 잡동사니들을 분류하고 쓰레기통에 넣고 하는 것들이 내게는 꽤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다 쓸모 있어 보이고 꼭 필요할 것만 같아 모아두었는데 희한하게 몇 달 뒤 그 물건들은 또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있었다. 서랍 안의 물건을 만지고 있으면 그 날의 감정과 사건이 떠올라 정작 버리지 못하고 다시 넣어두기도 일쑤였다.

 아이가 어릴 적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같은 품목이 두 개 세 개씩 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충분한 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돈하지 않아서 없는 줄 알고 다시 사서 물건이 중첩되어 쌓인 것이다. 심지어 이 곳 저곳에 있는 바람에 더욱 그랬다. 나는 에릭 호퍼가 말한 ‘가진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상당히 부족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다시금 버리기보다 가지런히 넣어두기를 하려는 내게 남편은 과감히 비닐봉지에 넣도록 독려했다. 한 때 친하게 지냈던 언니의 사진, 친구와 주고받던 편지와 엽서들, 친구 언니의 청첩장까지 나오자 남편은 혀를 내둘렀다. 미니멀리즘의 모던한 집을 상상만 하며 잡동사니 가득한 우리 집 요소요소에 사람 사는 내음이 나고 정감이 가는 아기자기함이 함께 하지 않냐고 위안을 삼던 날들이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이기에 버려야 정리된다는 남편과 중고거래와 나눔을 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이 부딪히기도 했다. 편지 쓰기를 좋아했던지라 예쁜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어찌나 많이 모아놨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한 무더기 나왔다. 이제 손 편지는 잘 쓰지 않지 않냐 는 남편의 설득에 눈물을 머금고 예쁜 편지지 한 움큼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버리자는 것을 나는 쓰겠노라고 다짐하며 잘 챙겨두었다. 덕분에 올해는 많은 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야 할 것 같다.


정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쓸모없는 것을 비우고 나누어 간결하게 하는 일도 분명 품이 든다. 아이의 물건은 더더군다나 정리가 어렵다. 언젠가 쓸 거라고 생각한 것들이 아이의 성장에 따라 사용 시기가 지나 버리고 그 언젠가는 오는 법이 없었다. 정리라는 것은 사람을 참 겸허하게 만들었다.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를 스스로 마주하며 반성의 시간도 갖게 되었다. 켜켜이 먼지 쌓인 가방들, 유행이 지난 옷들은 양반이었다. 정말 깜짝 놀란 것은 수많은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숟가락들이었다. 도대체 왜 몇 년에 걸쳐 이리 많은 비닐봉지와 숟가락을 모았던 것인가. 단출한 식구에 비해 나중에, 나중에를 외치며 물건이 지나치게 많았다. 배달시키면 으레 음식에 따라오는 나무젓가락은 백 개가 넘었다. 싸다고 사두고 향이 좋다고 또 산 바디 용품은 몇 년을 쓸 정도였다. 결국 정리의 가장 큰 힘은 현재 나를 파악하는 데 있었다. 나의 집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었고 그 이후로 더 많은 물건이 쌓였던 것도 같다. 많은 시간이 지나 과거의 일로 가슴은 아릿하지만 상처는 아물어서 단단해졌는지 버려야 할 물건들이 이제 너무 많았다. 나는 어느새 지난날을 정리하고 있었다.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많았고 버리고 정리하니 홀가분했다.

그리고 물건이 많이 줄어든 나의 집은 조금 더 단출해지고 편안해졌다. 집 안에 쌓였던 물건들을 분류하고 정리한 탓에 불필요한 지출이 줄어들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오는 온라인 쇼핑으로 많이도 샀다. 지난겨울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마스크를 사려고 쇼핑몰을 기웃대다가 싼 것 같으면 뭘 그렇게도 많이 사댔다.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쉽게 물건을 샀는데 그 모든 물건이 결국 스트레스받은 나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한 달이 넘게 나의 집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과정은 나의 머릿속과 가슴속까지 정리하는 긴 여정이었다. 어느 날은 서랍 하나, 어느 날은 가구 하나, 또 어느 날은 하루를 통째로 내어 정리하고 정돈했다. 그 와중에 힘이 들어 앓아눕기도 했다. ‘나중에’, ‘언젠가는’ 결코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을 뼛속 깊게 느끼며 나는 현재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에는 늘 더 좋은 것이, 더 예쁜 것이 또 나온다. 미니멀리즘은 비단 물건뿐 아니라 나의 마음가짐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물건을 버리고 수많은 쓰레기 봉지를 채워 버렸음에도 불편함은 전혀 없다. 오히려 공간이 넓어지니 쾌적하고 간결해서 좋다. 맥시멀 리스트가 쉽게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물건과 공간을 정리를 하며 나의 마음까지 정리됨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지,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 나의 마음 상태와 수많은 욕심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기에 아깝지가 않은 시간이었다. 추억을 간직한 엽서는 친구들과 사진으로 나누고 정담 어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좋아하는 야외 활동을 즐기지 못하고 장시간 집에 갇혀 우울한 내게 정리는 훌륭한 소일거리였고 나를 들여다보며 성장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이 긴 방학과도 같은 늘어진 시간에 감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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