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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Oct 27. 2020

엄마의 살림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고 난 후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각종 모임이 줄고 외식이 줄었으며 온 가족이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것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당연한 것이 되었다. 사회 교과서에서나 보던 홈캉스, 재택근무, 원격 수업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용어들이 되었다. 여행이며 카페 나들이는 물론이고 집 앞 산책도 쉽지 않다. 일상은 그렇게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잠식되었다. 코로나로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 그마저 제한되어 가까운 마트를 잠시 다녀오는 것이 외출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나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저녁 식사를 포근하고 따뜻한 가족만의 일상이라 여기며 밥을 차리는 것도 신나하고 귀찮게 느껴진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즐기는 편이었다. 하루 종일 각자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은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늘 귀가가 늦는 남편에게 불만을 털어낼 만큼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는 식사 시간은 내게 따뜻한 가족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내가 집 안에 갇혀 가족의 모든 일상이 집에서 이루어지기 전의 꿈같은 것이었나 싶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는 삼시 세 끼를 차려내어야 하는 주부의 고단함에 직면했고 두 손을 들었다. 부엌에 틀여 박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엌 한 귀퉁이 우두커니 놓인 붙박이 가구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겨울이 오기 전 장만한 식기세척기가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었던 게 설거지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좋아하는 커피 마실 시간이라도 확보하게 되었다. 혼수로 장만하고 싶었지만 게으른 사람이나 쓰는 거라는 친정어머니의 구박에 사지 못했던 식기세척기는 식사 후 티타임을 즐기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적당히 게으른 인간이라는 걸 인정했고 내 시간이 필요했기에 나를 위해 돌아가는 모든 기계는 고마웠다. 주부를 위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는 세탁기와 무선 청소기와 식기세척기는 요즘 말로 돌아 서면 밥한다는 돌 밥 생활중인 내게 누구보다 든든하고 고마운 도우미였다.

몇 달만 버티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는 2020년의 첫 자락부터 겨울, 봄, 여름을 연이어 갉아먹고도 진행 중이다. 끝없는 감금 아닌 감금 같은 재택 생활과 쉴 새 없는 전업 주부의 삶에 적응하다가도 우울이 몰려오곤 한다. 살림이 말 그대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구나... 나는 문득 지난날의 엄마가 떠올랐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엄마는 나를 포대기로 업고 쭈그리고 앉아 빨래판에 비벼가며 빨래를 했다고 했다. 부뚜막에서 또는 곤로에서 밥을 하고 다시 쭈그려 앉아 설거지를 했을 것이다. 청소기가 없었으니 일일이 비질하고 걸레로 딱딱한 방바닥에 무릎을 대어가며 바닥을 닦아내었을 터이다. 어린 시절 세탁과 탈수로 나누어진 세탁기를 처음 사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식구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기 위해 빨래를 도맡아 비누를 묻히고 빨래판에 힘겹게 옷가지를 비벼대고 물에 젖은 무거운 빨래를 헹구어냈을 젊은 엄마는 무더운 여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쪼그려 앉았을 그 무릎이 새삼 안쓰럽다.

외식도 흔하지 않았을 시절, 힘들다는 말도 없이 아침 일찍부터 하루 세 끼에 간식까지 뚝딱뚝딱 차려낸 엄마의 수고는 당연하지 않았다. 지금도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려내시는 데 그것은 정말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침잠이 없어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음을... 고단한 나의 삶 속에서 깨닫는다.

수많은 비질과 걸레질, 빨래, 요리... 살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무릎은 닳아지고 관절이 아파지는 것이었다. 그런 보이지 않는 노력이 가족을 매일 살리고 건강하게 하였던 것이었다. 남의 고단한 노력과 희생은 칭송하였으나 나는 가까운 사람의 노력과 희생에는 눈이 멀었었나 보다. 모든 일은 본인이 겪어봐야 안다더니 딱 그 꼴이 되어 나 자신이 우습기까지 하다. 엄마가 나를 살렸고 그리고 이제 내가 나의 가족을 살리고 있다. 정말 사랑해마지 않는 가족들 이건만 나는 고단하고 힘들고 지겹고 탈출하고 싶고 울고 싶고 슬프기도 했다. 반복의 일상을 힘들어하는 내 성격 탓이겠건만 했지만 안부를 물으러 연락하는 지인들 모두 이러한 일상을 힘들다고 했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지내고 있다. 저녁의 맥주 한 캔으로 털어내기도 하고 카페인의 힘을 빌려 버티기도 하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젊었던 엄마의 시절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었다. 기계 문명의 발달로 나의 수고는 그 시절의 반의 반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엄마들이 참으로 애처롭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랬어야 하는 시절이었다지만, 기계가 없었다지만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고 집 안팎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해 낼 수 없는 일임에 나는 엄마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투정 부렸던 어린 나는 늘 엄마의 돌봄 속에 있었음을... 왜 몰랐던 것일까.

엄마의 살림은 가족을 돌보는 모든 삶이었고 그녀의 수많은 희생과 사랑의 시간이었다. 한 집안의 해님과도 같은 엄마의 삶이었다. 오늘 내려놓은 커피 잔 속에서 엄마의 얼굴이 일렁이며 보이더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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