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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Dec 02. 2021

집으로 오는 길

2002.12.22  상실의 시대 on

터벅터벅 밤길을 걸을 때가 있지.

사랑하는 이와 또는 가까운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헤어지고 나서 차가운 밤길을

혼자 걸을 때가 있지.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때가 있지.

이제 그것은 일상적인 습관, 마치 내 방 한 켠을 늘 차지하고 있는 가구처럼

더 이상 생소해 보이지도 새롭게 보이지도 않지. 그러나 한 때는 분명히 나의 관심을 끌었으며 내게 하나의 작은 기쁨이 되었던 것.

나는 그렇게 늘 무심히 지나치곤 했지.

높은 굽에 발이 아프면서도 일부러 구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길을 걸어.

앞에 있지도 않은 예전의 친구와 이야기 나눌 때가 있지.

그 친구와 나는 집에 가는 내내 대화를 나누고 내 앞에는 그네에 흔들리는 친구의 교복 치마가 하늘거리며 지나가네. 친구의 아련한 음성과 함께.

나는 그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를 하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닌 이미 어른이 된 아이.

그러나 내 친구는 조근조근 내 얘기를 잘 들어주기만 하네. 심각한 얘기들을, 그리고 재미있는 얘기들을.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친구와 얘기를 하고..

멀리 주홍빛 가로등 불에 친구는 아련히 사라져 가네. 나는 신호등을 바라보다 푸른 신호등 빛을 향해 달려가지. 번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 내 친구는 또 그렇게 쓸쓸한 날 집에 돌아오는 길... 하염없는 내 말동무를 해주네.

기억 속의 친구는 이제 내가 돌아갈 수 없는 그 어떤 날의 친구. 그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아.

그러나 그날의 그 친구와 보낸 정경, 심지어 날씨와 그 서늘한 기온까지도 내겐 생생한데...

나는 오늘 까만 밤길을 걷고 있고 친구는 여전히 나와 함께 그네를 타주네.

저녁이 오는 어스름한 그 시간의 친구와 나는 그대로 정지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어두운 밤길은 내게 작은 영사기 같아. 그러나 그 기억의 단편은 너무도 짧아. 내겐 까르르 웃던 그녀의 웃음과 조용조용 이야기하며 나를 위로하던 그녀의 따뜻한 음성만이 남아 다시금 그녀의 음성이 귓가를 스치며 내게 말을 걸어 조용히 나의 아픈 가슴을 외로운 마음을 위로해주곤 해.

그대로 정지.

행복하고  따뜻했던 그 시간 하나 골라 그대로 일시정지. ㅣㅣ

짧은 한 컷이라도 나의 삶은 따뜻하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그렇게 하늘을 오르는 그네처럼 늘 하늘을 닮아 가슴이 뿌듯했으면.

집으로 오는 길이 이다지도 멀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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